Saturday, August 9, 2008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리세요
그 다음
무언가 예쁜 것을
무언가 단순한 것을
무언가 쓸만한 것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을 나무에 걸어 놓으세요
정원에 있는
또는 숲속에 있는
어느 나무 뒤에 숨겨 놓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꼼짝도 하지 말고......
때로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죠
용기를 잃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그래야 한다면 몇 년이라도 기다리셔야 해요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건
그림이 잘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새가 날아올 때엔
혹 새가 날아온다면
가장 깊은 침묵을 지켜야 해요
새가 새장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새가 들어갔을 때
붓으로 살며시 그 문을 닫으세요
그 다음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세요
새의 깃털 한끝도 다치지 않게 하면서 말이지요
그러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서
나무의 모양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푸른 잎새와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의 반짝이는 금빛 부스러기까지도 그리세요
그리고 여름 뜨거운 풀섶의 동물소리를
또 그리세요
그리고는 새가 마음먹고 노래하기를 기다리세요
혹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에요
그 그림이 잘못된 징조에요
하지만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지요
당신이 싸인을 할 수 있다는 징조에요
그러면 당신은 살며시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으세요
그리고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세요

- 쟈크 프레베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당신만 생각하면 저절로
힘이 생겨나 이겨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언제나 따뜻함으로 날 맞아주기 때문입니다.
상처로 얼룩진 마음으로 다가가도
당신의 따뜻함으로 기다렸다는 듯 감싸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당신은 내가 그리워하는 것들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넓게 펼쳐진 바다도,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도,
아름다운 노래도, 가슴을 울리는 시도
당신의 가슴 속에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어떤 이유를 붙여도 당시을 사랑하는 진정한 의미를
다 표현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 김은미의'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이유'
(김용택 엮음 '사랑 그대로의 사랑') 중에서

나에게는 없었던 사랑

몇 해 전 두눈 잃은 청아한 친구 하나를 얻었다.
이놈은 매우 귀찮은 존재였다. 외출할 때는 혼자 보낼수가 없었다.
식사때는 여기 저기 어린애처럼 흘리며 먹고 반찬을 일러주지 않으면 한 가지 반찬에만 손이 간다.
이녀석 때문에 식사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반찬에도 손을 대질 못한다. 녀석을 위해서다.
화장실도 일일이 알려줘야 하고, tv를 봐도 일일이 표정을 읽어줘야하고, 책을 봐도 감정 넣어 소리내어 읽어야만 한다.
누가 옆에 없는 것을 보면 얼른 달려가야 하는 녀석을 내가 사귄것이다.

그런 어린애 같은 녀석이 장가를 간다는 것이다.
신부에게 물었다.
정상인 당신은 너무 큰 희생이 아니냐고,
그녀는 나에게 말했다.
결혼은 희생이 아니라 근엄한 사랑이라고,
그날부터 나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그녀에게는 마음으로 보는 눈이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없었던 것이다.

얼마 후 그들을 찾아 갔을때 난 또 다시 놀라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친구 녀석이 의젓한 가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청소를 하고, 점자 편지를 쓰고,아이를 돌보고,신부의 피곤한 다리를 풀어주고 있었다.
난 친구에게 물었다.
너무 큰 사랑을 주는것이 아니냐고,
그가 대답했다.

평생 주어도 부족한 것이 사랑이라고,
그날부터 나는 눈을 감는 버릇이 생겼다.
나에게는 없었던 사랑이다.

- 이헌선 시집"나에게는 없었던 사랑"

물푸레나무의 의미

"이것은 어떤 이름을 가진 나무인가요?"

그녀가 묻는다.

"물푸레, 물푸레나무지요."

"물푸레,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네요."

"그 이름은 바로 당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지요?"

"이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물에 담그면 잉크빛 푸른 물로 변합니다.

그래서 물푸레나무지요.

당신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면 나는 그대로 푸르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물푸레나무입니다."


- 양귀자 "천년의 사랑" 중에서

딸아! 연애를 해라

딸아!
연애를 해라!
호랑이 눈썹을 빼고도 남을 그 아름다운 나이에
무엇보다도 연애를 해라.
네가 밤늦도록 책을 읽거나 컴퓨터를 두드리거나
음악을 듣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몹시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타까움을 금치 못한단다.

그동안 너에게 수없이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마는,
또한 음악이 주는 그 고양된 영혼의 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했다마는, 그러나 책보다 음악보다 컴퓨터보다 훨씬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은 역시 사람이 사람을 심혈을 기울여
사랑하는 연애가 아니겠느냐.
네가 허덕이는 엄마를 돕겠다는 갸륵한 마음으로
기꺼이 설거지를 하거나 분리된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갈 때면
나는 속으로 울컥 화를 내곤 한단다.

딸아!
제발 그 따위 착한 딸을 집어치워라.
그리고 정숙한 학생도 집어치워라.
너는 네 여학교 교실에 붙어 있던 신사임당의 그 우아한 팔자를
행여라도 부러워하거나 이상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 테지.
혹은 장차 결혼을 생각하며 행여라도 어떤 조건을 염두에 두어
계산을 한다거나 뭔가를 두려워하며 주저하고 망설이는 것은
아닐 테지.

딸아!
너는 결코 그 누구도 아닌 너로서 살기를 바란다.
그런 의미에서 당당하게 필생의 연애에 빠지기 바란다.
연애를 한다고해서 누구를 카페에서 만나고 함께 극장에 가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그런 종류를 뜻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알리라. 그런 것은 연애가 아니란다.
사람을 진실로 사귀는 것도 아니란다.
많은 경우의 결혼이 지루하고 불행한 것은
바로 그런 건성 연애를 사랑으로 착각했기 때문이다.

딸아!
진실로 자기의 일을 누구에게도 기대거나 응석 떨지 않는
그 어른의 전 존재로서 먼저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연애란 사람의 생명 속에 숨어 있는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푸른 불꽃이 튀어나오는 강렬한 에너지를 말한다.
그 에너지의 힘을 만나보지 못하고 체험해보지 못하고 어떻게
학문에 심취할 것이며 어떻게 자기의 길을 개척할 수 있을 것이냐.
그러나 세상에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듯 깊고 뜨겁고 순수한
숨결을 내뿜는 야성의 생명성을 제대로 맛보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
솔직하게 말못할 것도 없다.
나는 아직도 제일의 소원의 하나로 연애를 꿈꾸고 있단다.
오랫동안 시를 써왔지만 그보다 더 오랫동안 수많은 덫과
타성에 걸려서 거짓 정숙성에 사로잡혀 무사하게 살아왔다.
지금까지의 대부분의 여성의 삶이라는 것이 그런 범주였다는 것은
너도 잘 알고 있으리라.

딸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발 이제부턴 다이어트를 멈추어라.
자본주의 상인의 줄자나 저울에나 맞는 그 나약한 몸으로 21세기를
어떻게 살아내려고 몸무게를 줄이느냐. 날씬한 허리,
균형 잡힌 몸매를 원할 때가 있다면 그것은 건강을 생각을
할 때 딱 한 가지뿐이다.
땀 흘려 일하고 입을 쩍 벌려서 상추쌈을 먹고 늑대 같은
야성의 힘으로 아이를 낳고 또 사랑을 하는 그런 넘치는 에너지를
가진 여성이 되거라.
탐스럽고 비옥한 대지와 무한한 생산성이야말로
여성의 진정한 힘이요, 미의 원천이란다.
다가오는 세기의 진정 아름다운 여성은 그렇듯 넘치는 야성과
넓고 순수한 힘을 지닌 여성일 것이다.
20세기의 업적의 하나로 남녀 차별과 고정관념이 무너진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이제 말라깽이가 아름답다는 고정관념도
과감히 버려야 한다.
얼굴이 검은 여자도 아름답고 뚱뚱한 여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해 보아라. 얼마나 시원하고 편하고 멋있느냐.
몸이란 원래 그 자체의 음악을 가지고 있다지 않니?
자신의 몸을 자본주의 상인들이 만든 유치한 옷걸이로
전락시키거나 짧은 수명의 유행 상품으로 변장시킨
줄도 모르고 끝없이 몰려다니는 가련한 미인군이나 막무가내의
소비의 인질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

딸아!
지금 막 코앞에 다가오는 세기는 틀림없이
여성의 세기가 될 거라고 한다.
어서 네 가슴 속 깊이 숨쉬고 있는 야성의 불인 늑대(archetype)를
깨워라. 그리고 하늘이 흔들릴 정도로 포효하며 열정을 다해
연애를 하거라.

- 문정희 (월간 작은이야기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