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ly 30, 2008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1장. 철드는 소년
나는 형의 손을 잡은 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또또까 형은 나에게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드려주고 가르쳐주었다. 나에게 그런 형이 있어 매우 기쁘기는 하지만 형은 언제나 밖에서만 가르쳐주었다. 내가 사물에 대해 깨닫게 된 것도 밖에서였다. 집에서는 저질렀고 그때마다 나는 매를 맞곤 했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집안 식구들은 나를 때리는 일이 없었다. 조금 자라서 차츰 무엇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자 식구들은 내가 장난꾸러기라는 것을 알게 됐고 그 후로 나는 항상 <말썽꾸러기> <강아지 같은 놈> <털도 나지 않은 고양이> 등의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아마밖에 나가서 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노래 부르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노래란 정말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또또까 형은 노래도 잘 불렀지만 특히 휘파람을 잘 불었다. 나는 형의 흉내를 아무리 내려고 해도 잘되지 않았다. 형은 애써 나에게 휘파람 부는 법을 가르쳐주려고 했지만 나팔과 같은 입모양은 잘 되지 않았고 소리는 더욱 나오질 않았다. 그 대신 속으로 흥얼거리는 노래를 할 수 있었다. 조금 어색하기는 하지만 하면 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내가 어릴 때 엄마가 즐겨 부르시던 노래 가운데 한 곡을 기억하고 있다.
엄마는 따가운 햇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쓰시고,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셨다. 허리에 앞치마를 두르시고 몇 시간씩이나 물 속에 손을 담그신 채 하얀 비누거품을 일으키시며 빨래를 하셨다.
그리고 깨끗이 빨아진 옷을 줄에 갖다 널곤 하셨다. 줄에 가득 빨래가 널리면 긴 장대로 줄을 받쳐 올리셨다. 그때 엄마는 화울라베르 박사님댁의 빨래를 해주고 계셨던 것이다. 엄마는 큰 키의 날씬한 미인이셨다. 까만 피부에 새카만 머리는 묶지 않고 길게 밑으로 늘어뜨리면 허리까지 내려와 닿았다. 그러나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던 엄마의 모습도 노래를 부르시는 엄마의 모습만큼 아름다워 보인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 엄마 옆에 앉아서 이 노래를 배웠다.
사공아, 사공이여, 무정한 사공이여 그래도 인해, 나 죽을 것만 같아.
파도가 출렁거리는, 먼 바다 위로, 나의 사랑 사공은 멀리 떠나 갔네!
사공의 사랑은 기약할 수 없어 배가 닻을 올리면 사공은 떠나가네, 파도가 거세게 출렁이는데......
지금도 이 노래는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한다. 또또까 형이 갑자기 나를 잡아당겨서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제제 뭘 생각하니?" "아무 생각도 아니야, 노래를 부르고 있었어." "노래?" "그래, 노래......" "제제, 난 노래소리를 듣지 못했는데?"
형은 소리없이 노래 부르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입을 다물었다. 형이 그걸 모르고 있다면 가르쳐 주지 말아야지. 우리는 <리어 -- 상파울로> 간선도로변에 왔다. 그곳에는 큰 트럭과 작은 자동차, 수레, 자전거들이 빠르게 다니고 있었다. "제제, 잘봐!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좌우를 잘 살피는 거야. 자! 건너가자." 우리는 힘껏 달려 길을 건너갔다. "무서웠니?" 조금은 무서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듯 머리를 흔들어 보였다.
"그럼 다시 길을 건너 볼까? 어디 잘하는지 내가 시험해 봐야겠어." 우리는 다시 길을 건너왔다. "잘했어. 그럼 이번엔 너 혼자서 해봐. 너도 이제 어른이 된다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돼."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자! 혼자 건너봐." 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단숨에 길을 건넜다. 그리고 잠시 머뭇거리고 있자니 돌아오라는 형의 신호가 있어 다시 건너오자 형은,
"처음치고는 아주 잘했어. 그런데 한 가지 빠뜨린 게 있었어. 건너기 전에 좌우를 살펴봤어야 했어. 내가 언제까지나 널 따라다니며 신호를 해줄 수 는 없잖아. 돌아오는 길에 또 연습 하기로 하고 이제부터 네게 보여줄 곳이 있어." 그리고 형은 나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길을 걸으며 나는 언젠 가 형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또또까 형!" "응!" "철이 든다는 것이 굉장한 것이야?" "웬 바보같은 말이니?"
"응, 에드문등 아저씨께서 그러시는데 나더러 다른 애들보다 조숙해서 철이 들고 곧 이성을 갖게 될 나이에 들게 된다고 말했어. 그러나 난 조금도 달라진 것 같은 느낌이 없거든." "에드문드 아저씨는 바보야. 항상 머리 속에 복잡한 일들만 가득담고 다니니까 말이야." "형! 아저씨는 결코 바보가 아니야. 아저씬 척척박사야. 나도 크면 아저씨같이 될 거야. 그리고 시인도 되고 멋진 나비넥타이도 맬 거야. 언젠가는 꼭 멋진 신사가 되어 나비넥타이를 매고 사진도 찍을 거야." "왜 꼭 나비넥타이니?"
"나비넥타이를 안 맨 시인은 없거든. 아저씨가 보여 준 시인들 사진엔 몯 나비넥타이를 매고 있었어." "제제!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두는 믿지마. 에드문드 아저씨는 거짓말장이고 얼간이란 말야." "그럼 아저씨는 매춘부의 아들이란 말이야, 형?" "제제,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못써. 에드문드 아저씨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야. 다만 난 거짓말장이고 얼간이라고 말을 한 것 뿐이야." "형은 아저씨가 거짓말장이라고 했잖아?" "네가 한 말 하고 거짓말장이하고 무슨 상관이 있니?"
"아니야, 상관이 있단 말야. 저번에 아빠가 쎄베리노 아저씨와 카드놀이를 하셨는데 그때 라보네 아저씨를 가리켜 '매춘부의 아들 녀석이 거짓말만 하고 다닌다'고 쎄베리노 아저씨가 말했는데 그때 아무도 그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던데?" "제제, 어른들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괜찮아." 우리는 잠시 얘기를 멈추었다. "그럼 에드문드 아저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지. 그럼 얼간이는 무슨 말이야? 또또까 형?" 또또까 형은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얼간이가 아니야. 착하신 분이야.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고, 언젠가 나를 딱 한 번 때리시긴 했지만 그것도 심하게 때리지는 않았어, 형." 또또까 형은 깡충 뜀녀서 좋아했다. "에드문드 아저씨가 너를 때렸다구? 그게 언젠데?" "내가 너무 장난이 심하다고 글로리아 누나가 나를 딘디냐 할머니댁에 보냈을 때야. 아저씨께서 신문을 읽으시려고 하는데 안경을 찾지 못하셨거든. 딘디냐 할머니와 아저씨는 안경을 찾아 이구석 저 구석을 헤매셨어.
그때 내가 나에게 구슬 살 돈 1또스땅(브라질의 옛 화폐 단위)만 주면 가르쳐주겠다고 했지. 아저씨께서 조끼에서 돈 1또스땅을 가지고 오시면서 '자, 돈을 줬으니 찾아주렴.'하시기에 빨래감이 담겨진 바구니 속에서 안경을 찾아드렸더니 아저씨께서 '바로 네가 그랬구나, 이 나쁜녀석 같으니라구!'하시며 내 엉덩이를 한 대 때리시고 돈을 다시 빼앗아가버렸어." 또또까 형은 깔깔대며 웃는다. "매를 덜 맞을까 해서 거기로 갔는데, 그곳에서도 맞았구나. 자, 이제 가자. 너무 늦겠구나."
그래도 여전히 나는 에드문드 아저씨를 생각했다. "또또까 형, 어린 아이들도 퇴직자야?" "뭐라고?" "에드문드 아저씨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돈을 벌잖아. 일도 하지 않 는데 왜 시청에서 돈을 주지?" "그래서?" "아이들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먹고 잠만 자는데 부모님은 돈으르 주시잖 아."
"제제, 퇴직자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냐. 퇴직자라는 말은 에드문드 아저 씨처럼 일을 많이 해서 머리가 하얗게 되고, 느릿느릿 걷는 사람을 말하는 거야. 제제, 제발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그렇게 알고 싶거든 아저씨에께 가 서 여쭈어봐. 나한테 복잡한 얘기는 묻지마. 제제, 너도 다른 애들처럼 행 동하렴. 말을 함부로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그러나 복잡한 생각으로 너의 머리를 채우지는 말아. 그렇지 하지 않으면 너하고 다시는 같이 다니 지 않을 테니까."
나는 기분이 나빠서 더 이상 형과 말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노래도 부 르고 싶지 않았다. 나의 마음 속에서 노래를 부르던 작은 새가 날아가버린 것 같았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또또까 형은 어떤 집을 가리켰다. "제제, 저 집이야. 어떠니?" 내가 보기엔 아주 평범한 집이었다. 파란 창문이 있는 하얀 집이었다. 창 문들은 모두 잠겨져 있었으며 아주 조용한 집이었다. "마음에 들어, 그런데 왜 우리는 여기로 이사를 해야 하지?" "이곳으로 이사하는 것이 더 좋기 때문이란다." 울타리 사이로 망고나무와 따마린드나무가 보였다.
"넌 무슨 일이든 관심이 많고 눈치가 빠르니 우리 집의 사정을 잘 알겠지 ? 아버지는 놀고 계시잖아? 아버지가 스코트월드씨와 싸우고 회사를 그만 둔 지가 벌써 6개월이 넘었단 말이야. 너는 라라 누나가 공장에서 일하 는 것도 모르고 있을 거야. 또 엄마도 시내에 있는 영국인 방직공장에 다 닌다는 걸 모르고 있어. 안 그래? 이 바보야. 모두들 돈을 모아 새 집을 마련하려고 그러는 거야.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벌써 8개월 치의 집세가 밀려있단 말야. 하기야 넌 어려서 이런 슬픈 사정을 모를 거야. 하지만 난 어려운 집안을 돕기 위해 성당에서 미사 돕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 아."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없이 있었다. "또또까 형, 검은 표범과 사자 두 마리도 이곳으로 가져올 거야?" "그럼, 가져오고 말고. 닭장을 옮겨올 사람이 이 형말고 또 누가 있니?" 형은 나를 안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내가 뜯어가지고 이곳에 다시 만들어줄게." 나는 마음이 놓였다. 만약 그것이 없다면 동생 루이스와 함께 놀 수 있는 다른 놀이터를 짜야만 하기 때문이다.
"제제, 이제 너와 내가 얼마나 친한 사인지 알겠지? 그러니 어떻게 그 일 을 해냈는지 나에게 알려 줄 수 있겠지?" "형, 난 정말 모르겠어. 맹세코 모른단 말야." "거짓말 하지마, 제제. 누군가가 네게 가르쳐주었을 거야." "정말 누구한테도 배운 일이 없어 형, 아무도 내게 가르쳐준 사람이 없다 니까. 만약 있다면 잔디라 누나가 말한 대로 나의 대부인 악마가 잠자는 사이에 꿈을 통해서 가르쳐주었을 거야."
또또까 형은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엔 내게 바른 대로 말하라고 내 머리에 알밤을 먹이기도 했다. 하지만 난 아무 얘기도 하 지 못했다. "혼자 힘으로 그런 걸 터득할 사람은 없는 거야." 그러나 나는 그런 말을 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정말 아무도 그 일을 가르 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의 신비였다. 얼마 전의 일이다. 집안 식구들이 온통 난리였다. 내가 딘디냐 할머니 댁 에서 신문을 읽고 계시던 에드문드 아저씨 곁에 앉아 있던 때부터 시작되었 다. "에드문드 아저씨!" "왜 그러니, 얘야?"
아저씨의 안경이 다른 사람들처럼 콧등에 거려있었다. "아저씨께서는 언제 읽는 법을 배우셨나요?" "그건 왜? 아마 여섯 살인가 아니, 일곱 살쯤이었을 게다." "그럼 다섯 살에도 읽을 수 있나요?" "배우면 읽을 수도 있지. 그렇지만 배운다는 게 그리 쉽지는 않단다. 너무 어린 나이이기 때문이지." "그럼 아저씨는 어떻게 글을 읽는 법을 배우셨는데요?" "다른 사람들이 배우는 것처럼 글자 연습판을 놓고 배웠지. 가령 B+A=BA가 된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누구든지 그렇게 해야 배우게 되나요?"
"모르긴 해도 아마 그렇게들 배울 걸." "아저씨! 다른 방법은 없나요?" 아저씨는 약간 짜증이 나서 나를 쳐다 보셨다. "얘야, 제제. 모두들 그렇게 배워야 되는 거란다. 제제, 이제 신문 좀 읽게 해주겠니? 뒷 뜰에 나가서 고야바 열매가 달려있는지 가보렴." 아저씨는 안경을 다시 잘 쓰시고는 신문을 읽으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저씨 옆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쳇! 속상해." 어찌나 고함을 크게 질렀던지 치켜올린 안경이 다시 콧등으로 흘러내렸다.
"아저씨! 신문을 읽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꼭 드릴 말씀이 있어서 먼 이곳까지 걸어왔단 말이에요." "꼭 할 얘기가 있다구? 그럼 어서 얘기를 해봐라." "싫어요. 우선 아저씨께서 언제 연금을 타게 되시는지 알고 말씀드리겠어요." "내일 모레요! 왜?" 아저씨는 슬쩍 바라보시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내일 모레면 무슨 요일인가요, 아저씨?" "금요일이다." "그럼 금요일날 시내에 가시면 <달빛>을 하나 사다 주실래요?" "<달빛>이라니? 제제, 도대체 그게 뭐냐?"
"그것은 언젠가 영화에서 본 하얀 망아지에요. 그 하얀 망아지의 주인은 후레드 톰슨이구요. 정말 잘 길들여진 망아지란 말이에요." "제제, 너는 그럼 바퀴가 달린 망아지를 사달라는 얘기냐?" "아니에요. 아저씨, 전 말고삐에 손잡이가 달리고 머리 부분이 까만 장난감 망아지를 갖고 싶어요. 손잡이를 잡고 빨리 달릴 수 있는 것 말이에요. 제가 이담에 커서 영화에 출련하려면 연습을 많이 해야하거든요." 아저씨는 계속 웃고만 계신다. "알겠다, 알겠어. 그래 내가 그걸 사다 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줄테냐?"
"사다 주시면 아저씨께 해드릴 일이 하나 있어요." "뽀뽀 말이냐?" "그것 말구요. 뽀뽀보다 더 좋은 거요." "그럼 뽀뽀가 아니면 껴안아 줄래?" 금 말씀을 듣자 나는 에드문드 아저씨가 무척 불쌍해 보였다. 내 마음 속의 작은 새가 들려준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자주 들어왔떤 이야기인데 에드문드 아저씨는 아줌마와 다섯 명의 아이들이 있지만 서로헤어져 혼자 사시면서 자식들에 대한 외로움 때문에 천천히 걸어다니신다.
그러한 아저씨의 속마음을 누가 알까. 그런데도 자식들은 한 번도 아저씨를 찾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탁자를 돌아가 아저씨의 목을 꼬옥 껴안앗다. 에드문드 아저씨의 희고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내 이마를 스쳤다. "아저씨 지금 제가 한 일은 망아지를 사주시는데 대한 대가는 아니에요. 아저씨께 보여드리는 것은 다른 것이에요. 글을 읽는 것을 보여드리겠어요." "아니, 제제. 네가 글을 읽는다구? 아니 그게 정말이냐?" "도대체 누가 네게 글을 가르쳐주었니?" "아무도 제게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제제 너 아저씨를 놀리는 건 아니겠지?" 나는 아저씨 곁을 나오면서 이렇게 큰 소리로 말했다. "만약 제가 금요일날 글을 읽지 못하면 망아지를 주지 않으셔도 돼요." 그 때, 우리집은 전기세를, 내지 못해 전기회사에서 전기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에 밤이 되면 잔디라 누나는 등불을 켰다. 누나가 등불을 켤 때면 나는 <별> 표식이 되어 있는 신문을 보려고 발돋움을 하곤 했다. 그 신문의 별표식 밑에는 집을 지켜달라는 기도문이 적혀 있었다. "잔디라 누나, 나 목마 좀 태워주지 않을래? 저걸 읽을 수 있도록......"
"제제, 장난 하지마. 난 지금 바빠." "누나 나 좀 오려줘봐. 읽나 못 읽나 보면 알 거 아냐." "제제, 나한테 거짓말하면 혼날줄 알아!" 그리고는 나를 목에 올려놓고 문 뒤로 바싹 다가서 주었다. "자, 이제 읽어봐. 못 읽으면 혼나?" 나는 정확히 기도문을 읽었다. 그것은 집안을 보호하고 축복을 빌며 악령을 몰아내달라는 축원문이다. 잔디라 누나는 나를 땅에 내려 놓고 놀라서, "제제, 너 이걸 모두 외웠지? 지금 누나를 놀리고 있는 거지?" "누나, 나 정말 다 읽을 줄 안단 말야."
"제제, 글은 누구나 배우지 않고는 읽지 못하는 거야. 에드문드 아저씨가 가르쳐 줬니, 아니면 딘디냐 할머니가 가르쳐 줬니?"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어." 누나는 신문지 조각을 가지고 왔다. 나는 그것을 누나가 가리키는 대로 읽었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그러자 누나는 글로리아 누나를 불렀고 누 나는 흥분해서 알라이디를 불렀다. 그러자 금방 이웃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금 또또까 형이 알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에드문드 아저씨가 네게 글을 가르쳐주고 나서 네가 잘 읽으면 망아지를 사준다고 약속한 거지?"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내가 아저씨한테 물어볼 거야?" "그래. 가서 여쭈어봐. 형,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정말이야. 내가 그걸 안다면 형한테 벌써 얘기했을 거야." "좋아, 두고 보자. 앞으로 뭘 해달라고 하기만 해봐라. 자 그만 가자." 형은 화가 나서 나의 손을 잡아당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복수를 해줄 궁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 바보야 잘됐다. 넌 너무 일찍 글을 배웠기 때문에 내년 2월에는 학교에 가얌나 될 걸?" 이 생각은 바로 잔디라 누나의 생각이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게 되면 오전에는 집안이 항상 조용해질 테고 또 학교에 다니면 내가 얌전해지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리오 -- 상파울로> 도로변의 길 건너기 연습을 더 해보자. 학교에 갈 때마다 보모처럼 따라 다니면서 길을 건네줄 수는 없지 않니. 넌 영리하니까 무엇이나 알아서 잘 배우겠지만 말이야."
* * *
"자! 이제, 망아지 여기 사왔다. 내게 보여준다는 거 보여주렴." 아저씨는 신문을 펼치시고 어떤 약품광고 선전 구절을 지적하셨다. "이 약품은 약국이나 유사 종류의 상품을 판매하는 가게에서 구입할 수 있음." 에드문드 아저씨는 깜짝 놀라시며 뒤뜰에 계시는 딘디냐 할머니를 부르셨다. "어머니, 이 애는 약국이란 말까지 분명하게 읽었어요!" 두 분은 내게 번갈아 읽을 것을 지적해주셨고 나는 모두 읽어 보였다.
그러자 할머니께서는 세상이 뒤바뀌려는가 보다고 중얼거리셨다. 나는 에드문드 아저씨를 또 한 번 껴안아드렸고 약속한 망아지를 얻었다. 아저씨는 내 작은 턱을 어루만지시며 감격에 들뜬 목소리로, "오! 넌 정말 큰 인물이 되겠구나. 요 장난꾸러기야, 너를 제제(모세의 포르뚜깔 말)라고 부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구나. 너는 우리를 아름답고 환히 비춰줄 태양이나 별이 될 거야. 제제!" 나는 아저씨의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어 형의 말대로 아저씨는 역시 얼간이라고 생각했다.
"제제, 넌 아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건 이집트의 요셉에 대한 얘기야. 네가 좀 더 자라게되면 나의 말을 이해하게 될 거야." 나는 언제든지 이야기라면 미쳐있을 정도였다. 이해하기 어려운 얘기일수록 더욱 더 흥미가 있고 흥분이 되었다. 나는 아저씨가 주신 내 망아지를 쓰다듬다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쭈어보았다. "다음 주가 되면 아저씨는 제가 얼마나 자랐다고 생각하시겠어요?"
 
 
2장. 한 그루의 라임오렌지나무

우리 집에서는 형제들이 각기 동생들 하나씩을 돌봐주고 있다. 잔디라 누
나는 글로리아 누나와 브라질 북부 어느 집에 양녀로 보낸누이를 돌보았다. 안또니오(또또까 형의 본명)는 그 잔디라 누나의 귀염둥이였다. 라라 누나 는 나를 돌봐주었다. 누나는 나를 사랑하고 귀여워해 주었으나 통이 넓은 바지와 짧은 저고리를 입은 멋진 애인이 생긴 뒤로는 내게 시들해졌는지 나 를 귀찮아했다. 누나는 그 짜리몽땅한 애인에게 와전히 빠져 있었다. 우리는 일요일이면 역광장에 축구를 하려 가곤 했는데 그 애인은 나에게 맛있는 사탕을 사주곤 했다. 그것은 아마 내 입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이런저런 얘기들을 캐묻지 않는다면 들통이 날 리 없기 때문이다. 내 밑으로 두 명의 동생이 있었으나 어렸을 때 죽었단다. 그래서 얘기로만 들었을 뿐이다. 얘기에 의하면 그 애들이 삐나제 족 인디안 이었다고 했다. 둘 다 검고 긴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여자애는 <아라끼>, 사내에는 <쥬단디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에 태어난 막내 동생이 루이스이다. 루이스를 가장 많이 돌봐준 것은 글로리아 누나였고 지금은 내가 돌보고 있
다. 사실 동생 루이스는 별로 보살펴줄 필요가 없다. 그 애는 너무나 예쁘 고 착하며, 조용한 아이였으니까...... 루이스는 말을 할 때에도 어찌나 깜찍하고 귀엽게 말하는지 밖에 나가서 놀려고 하는 마음이 잊혀질 때도 있었다. "제제 형, 동물원 놀이 할래? 응? 오늘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잔아, 형?" 루이스가 똑똑히 말을 하는 것은 곧 성장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루이스가 나를 따라오는 것이 귀찮을 땐 이렇게 말을 하곤 했다.
"루이스! 너 미쳤니? 하늘을 보란 말야. 저기 폭풍이 오고 있잖아!......" 나는 입으로 그렇게 말했지만 동생의 조그만 손을 잡고 뒷뜰에 있는 축대 밑으로 갓다. 그곳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것은 동물원과 줄리뉴 씨 집 울타리 옆의 <유럽>이었다. 왜 유럽이라고 하는지는 내 마음 속의 작 은 새조차도 모른다. 그곳에서 우리는 빵 데 아수까리(리오에 있는 산이름 또는 설탕빵이라는 뜻) 놀이를 한다. 단추에 실을 꿰어서 한쪽에 묶어 놓고 단추를 하나씩 천
천히 내려보대는 케이블카 놀이다. 우리는 케이블카인 단추 하나하나에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내려왔다가 다시 손의 놀림에 의해 올려가 곤 했다. 그 중에서도 단추가 까맣고 큰 케이블카는 비리낑뉴 전차같았다. 재미있게 놀고 있을 때마다 뒷집 마당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오는 건 흔한 일이었다. "제제, 우리집 울타리를 망가뜨리려고 그러니?" "아녜요. 디메린다 아줌마. 괜찮아요. 저를 보세요. 동생과 놀고 있는 거 예요. 얌전하게요." "그래, 착하구나. 동생하고 사이좋게 노는 것은 아주 착한 일이야."
그러나 마음 속에서는 대부인 악마가 장난치는 것보다 더 재밌는 일은 없 다고 나를 부추겼다. "아줌마, 올해도 작년 크리스마스 때처럼 달력을 또 주시겠어요?" "그걸로 무얼 하려고?" "빵바구니 위에 걸어두고 보려구요." "그래, 줄께." 아줌마는 빙그레 웃으시며 약속을 해주셨다. 아저씨는 <쉬꼬 프랑꼬>에서 식료품점을 하신다. 또 하나의 장난감은 루씨아노였다. 처음에 루이스는 그걸 몹시 무서워하며 내 바지를 잡아 끌면서 돌아가자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나 루씨아노는 내 친한 친구였다. 나를 보면 큰 소리로
울어댔다. 글로리아 누나도 내 친구인 루씨아노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심지어 박쥐를 흡혈귀이며 어린애의 피를 빨아먹는다고까지 했다. "누나 그렇지 않아. 루씨아노는 내 친구이고 또 나를 무척 좋아한단 말야." 누나에게 루씨아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은 어려웠다. "넌 벌레나 무슨 물건들과 얘기를 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 나에게 있어서 루씨아노는 <알폰소스>의 들판 위를 날아다니는 비행기였 다. "저것 좀 봐라, 루이스!" 루씨아노는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것을 알아듣기라도 한듯이 행복하게 우
리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루씨아노는 비행기야, 그리고 또......!" 나는 갑자기 말문이 막혀 당황했다. 아저씨께서 가르쳐주셨는데 잊어버렸 던 것이다. 극예라고 했는지 곡예라고 했는지 도무지 떠오르질 않아 다시 에드문드 아저씨께 여쭤봐서 동생에게 바르게 가르쳐주기로 했다. 루이스는 또 동물원 놀이를 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닭장 앞으로 갔다 그 속에는 흰 암닭 두 마리가 닭장 안의 흙을 발로 파헤치고 있었다. 그러고 너무 순해서 우리가 벼슬을 쓰다듬어 주기도 하는 검은 암닭 한 마리도 있 었다.
"우선 입장권을 사도록 하자. 자! 루이시, 손을 잡아. 어린애드른 사람이 많은 곳에선 잃어버리기 쉬우니 손을 꼭 잡고다녀야 돼. 일요일이면 이곳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동생 루이스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더니 내 손을 잡았다. 매표소 앞에서 난 배를 앞으로 불쑥 내밀며 매표원에게 물었다. "아저씨 몇 살까지 무료로 들어갈 수 있어요?" "음, 다섯살까지......" "그래요? 그럼 어른표 한 장 주세요." 나는 표 대신 오렌지 나뭇잎 두 장을 따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루이스, 우선 멋있는 새부터 보여줄께. 앵무새, 멕시코산 무지개빛 앵무 새 그리고 야생하는 예쁘고 작은 새들이란다." 루이스는 신기하고 놀랍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우리는 여기저기를 구 경하며 천천히 걸어갔다. 너무 자세히 살펴봐서 그런지 글로리아 누나와 라 라 누나가 둥근 의자에 앉아 오렌지를 까고 있는 것까지 볼 수 있었다. 마 약 누나들이 그 얘기를 들었다면 이 동물원 놀이도 누군가가 볼기짝을 맞는 것으로 끝나게 될 거야. 그 누군가란 바로 나겠지만. "제제 형, 이젠 뭘 구경할 거야?"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옷매무새를 고치며 새로운 행동을 취했다. "자, 이젠 원숭이가 있는 곳으로 가자. 에드문드 아저씨는 늘 고릴라라고 말씀하시지만." 우리는 바나나 몇 개를 사서 원숭이에게 던져 주었다. 원숭이나 짐승들에 게 먹이를 던져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속 에서 경비원이 볼 수 있을라구. "루이스! 너무 가까이 가지마. 원숭이들이 네게 바나나 껍질을 던질질도 몰라." "형! 난 사자가 보고 싶어." "그럼 그럼 그리고 가자."
두 마리의 원숭이가 오렌지를 까먹고 있는 것을 보며 걸었다. 누나들의 이 야기 소리가 그곳까지 들렸다. "루이스, 다 왔다." 나는 아프리카 종인 털이 누런 두 마리의 사자를 가리켰다. 그때 동생이 검은 표범의 머리를 만지려고 했다. "루이스! 무슨 짓이야? 그 검은 표범은 이 동물원에서 가장 사나워. 그 표 범은 써커스단 사육사의 팔을 열여덟 개나 먹었기 때문에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루이스는 놀라서 팔을 얼른 뺐다. "형! 저 표범이 써커스단에서 온 거야?" "그렇단다."
"제제 형, 무슨 써커스단인데?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나는 대답할 써커스단의 이름을 생각해봤다. 무슨 써커스단이었더라? "아! 생각이 났어. <로젠버그 써커스> 단이야, 루이스!" "형! 그건 빵집 이름이잖아?" '요녀석이 이젠 제법 영리해져서 속이기가 힘드는 걸.' "아니 그건 다른 거야. 그런 이름의 써커스단도 있단 말이야. 자, 이젠 많 이 걸어 다녔으니 뭘 좀 먹자, 루이스!" 우리는 앉아서 먹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누나들이 얘기하는 데 가있었다.
"라라! 우리가 제제를 이해해야 돼. 저렇게 동생과 잘 놀아주고 있잖니." "언니, 그렇긴 해. 하지만 제제처럼 장난이 심한 애는 보기드물정도야." "그 애 피속에 악마가 있다는 것이 분명한 것 같아. 그러나 참 이상해. 그 토록 장난꾸러기인데도 동네에선 그 애를 미워하는 사람이 없잖아?" "하루라도 매를 맞지 않는 날이 없지만 차츰 철들 날이 있겠지." 나는 감사의 눈길을 글로리아 누나에게 보냈다. 누나는 항상 내편에서 도 와 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누나에게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얘! 라라, 조금 있다가 얘기하자. 저 애들이 너무 조용한 게 수상해." 누나는 벌써 눈치를 챈 것 같았다. 내가 돌담을 타고 셀리나 아줌마댁의 뒸뜰에까지 간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긴 빨래줄에 수많은 팔과 다리들 이 매달려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나는 아주 신기했다. 그러자 내 마음 속의 악마가 발래줄에 있는 팔과 다리를 떨어뜨려 보라고 충동질을 했다. 내 생각에도 그렇게 하면 무척 재미가 있을 것 같아서 나는 담 밑에서 아주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주워가지고 오렌지나무 위로 올라가 나무에 매여있는
빨래줄을 끊었다. 하마터면 나도 떨어질 뻔했다. 그때 큰 소리가 나고 사람 들이 몰려오는 것이었다. "도와 주세요. 빨래줄이 끊어졌어요." 그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빨래줄을 끊은 녀석은 바로 빠울로 씨 아들놈의 짓이예요. 그 녀석이 유 리조각을 주워 가지고 오렌지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똑똑히 봤어요."
"제제 형." "왜 그러니? 루이스." "형은 어떻게 동물원에 관해서 그렇게 아는 것이 많아?" "응, 그건 여러 번 가봤기 때문이야."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사실은 모두가 에드문드 아저씨께 들은 이야기들이
었다. 아저씨는 나와 함께 동물원 구경을 가자고 약속도 했었다. 하지만 에 드문드 아저씨는 걸음이 너무 느리시고 동물원에 도착하면 우리가 볼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다. 형은 전에 아버지와 같이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 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원은 <이자벨>시에 있는 바랑남작 거리에 있어. 그곳을 넌 모르지? 모르는 건 당연해. 그런 것을 알기엔 아직 어리니까. 바 랑남작같은 분은 분명히 하느님의 친구였을 거야. 왜냐하면 하느님이 동믈 의 짝을 지어주실 때 도와주었나 봐. 그러니까 동물원도 만들었겠지. 그리
고 네가 조금만 더 크면......" 누나들은 아직도 여전히 그곳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형 내가 더 크면 뭐가 어떻다고?" "이 녀석, 귀찮게 묻는군. 네가 조금 더 크면 동물원에 가서 동물의 수를 세는 법도 가르쳐주겠단 말이야. 20까지 셀 수도 있도록. 이십에서 이십오 까지는 암소, 황소, 곰, 사슴, 호랑이가 있다는 걸 알아. 그렇지만 있는 장 소는 잘 모르거든. 네게 정확한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 그래." 이제 동생 루이스는 동물원 놀이에 싫증이 났나 보다. "제제 형! <작은 오두막집>이란 노래 좀 불러줘."
"여기 동물원에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아니야, 사람들이 이젠 별로 없어." "루이스, 그 노래는 너무 길어서 네가 좋아하는 데만 부를께. 좋아하는 곳 이 매미가 나오는 부분이지?" 나는 가슴을 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대는 아는가 내가 어디서 왔는지 그곳은 과수원 옆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 높은 산 언덕이 있어 저멀리 바다가 보이지요.
난 여기서 많은 귀절을 건너 뛰었다.
가는 야자수 사이에서 매미들은 즐겁게 노래하지요. 황금빛 태양이 서산에 질 무렵 처마끝 밑으로 긴 지평선이 보이지요.
정원에서 분수가 노래하고 분수가의 한 마리 검은 새가 노래 부르지요......
나는 노래를 끝냈다. 그때까지 누나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누나들이 지칠 때까지 계속 노래를 부 르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오두막집의 노래를 끝까지 빼놓지않고 모 두 불렀고 또 다시 한 번 부르고 나서 <사랑스러운 그대 여행자여>와 <라모 나>라는 노래까지 불러댔다. 라모나를 부를 땐 두 절에다 다른 가사까지 만 들어 부르고 나니 그 다음이 생각나질 않아 노래가 끊겼다. 눈앞이 깜깜해
오는 것 같다. 결국 오늘도 매를 맞을 것이 뻔했다. 할 수 없이 누나가 있 는 곳으로 갔다. "자...... 라라 누나, 각오가 됐으니 때려." 나는 누나에게 등을 돌렸다. 누나는 너무 세게 때리기 때문에 참기 위해 이를 꽉 물고 있었다.
* * *
엄마는 한 가지 제안을 내셨다. "오늘은 모두 새 집을 보러가자." 또또까 형은 나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소근거렸다. "너, 나하고 새 집에 갔었다고 말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혼날 줄 알아."
그러나 난 그런 생각은 전혀 하지를 않았었다. 엄마와 우리들은 새 집을 향해 길을 떠났다. 글로리아 누나는 내 손을 꼭 잡고 식구들과 떨어지면 안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나는 한 손으로 루이스 의 손을 잡고 걸어갔다. "엄마, 새 집으로 이사는 언제 해요?" 엄마는 몹시 슬픈 표정으로 글로리아 누나에게 대답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후에 이삿짐을 꾸려야 해." 엄마는 피로에 지친 목소리로 대답을 하셨다. 나는 엄마가 불쌍하게 보였 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공장에 나가 일만 하셨는데 엄마가 너무 어리고 작
았기 때문에 청소를 할 때 책상을 닦으려면 그 위에 올라가서 닦으셨단다. 엄마는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고 그래서 엄마는 글을 읽을 줄도 모르신단다. 나는 그 얘길 들을 때마다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그래서 나는 시인이나 척 척박사가 되면 엄마에게 나의 시를 읽어드렜다고 맹세했었다. 거리의 상점들은 크리스마스 기분을 한창 돋구고 있었다. 모든 상점들의 진열장에는 산타클로스로 장식이 되었다. 그리고 상점마다 크리스마스 카드 를 사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난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하나님의
착한 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 해야겠다. 앞으로 좀 더 크고 철이 들면 지금보다는 나아지겠지. "이제 다 왔다." 엄마의 말씀에 모두들 즐거워했다. 집은 좀 작은 편이다. 또또까형은 엄마 가 잠가놓은 철사줄을 푸는 것을 도왔다. 글로리아 누나는 몸을 흔들면서 집안으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망고나무를 껴안았다. "이 망고나무는 내꺼야. 내가 제일 먼저 잡았으니까." 또또까 형도 나무 한 그루를 잡고 역시 누나와 같은 말을 했다. 나를 위한 나의 나무는 없었다. 나는 속이 상해 글로리아 누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나는? 누나." "저기 뒤쪽으로 가봐. 그곳에 나무가 더 있을 거야. 요 바보야!" 누나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보았으나 나무는 없고 풀만 무성했다. 그리고 가시가 많이 달린 늙은 오렌지나무와 담장 옆 조그마한 라임오렌지나무 한 그루가 서 있을 뿐이었다. 내가 보로통해서 돌아와보니, 식구들은 집안을 둘러보며 각기 자기 방을 정하느라 야단이었다. 난 글로리아 누나를 잡아끌어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없잖아 누나?" "넌 잘 찾지를 못해서 그래. 내가 가서 찾아줄 테니 기다려."
난 누나를 따라갔다 .그곳에서 오렌지나무를 훑어보았다. "제제, 넌 저 나무가 마음에 안 드니? 얼마나 멋지니?" 그러나 멋진 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나무마다 날카로운 가시들만 잔 뜩 돋아나 있고...... 모두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런 가시 많은 나무보다는 차라리 꼬마 오렌지나무를 가질 테야." "그 라임오렌지나무가 어디 있니?" 누나와 나는 오렌지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어쩜 정말 예쁜 오렌지나무로구나. 멀리서 봐도 금방 라임오렌지나무라는 걸 알겠다. 누나가 너만한 나이라면 다른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겠다,
제제." "그렇지만 나는 아주 큰 나무가 좋은걸?" "제제, 잘 생각해 보렴. 저 나무는 지금은 너와 함께 자리는 거야. 그럼 너희는 장차 한 형제처럼 지내게 될 지 아냐. 제제, 저 나뭇가지들 좀 봐. 마치 네가 탈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망아지같이 보이는구나!" 나는 이 셋상 무엇보다도 가장 초라하고 운이 없는 짓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 문득 스코틀랜드 술병의 천사 그림이 생각났다. 그때도 라라 누나는 이건 내 것하며 차지하던 생각이 떠올랐다. 글로리아 누나는 다른 것을 찾아 내었다. 그러자 또또까 형도 자기 것을
찾아 골랐다. 그런데 난 뭐야? 왜 난 맨 꼴찌이어야만 하지? 날개도 떨어져 나가 머리만 남아 있는 네번째 천사가 내 것이람? 어디 두고 보자. 내가 크 면 아마존의 정글과 밀림 속의 큰 나무는 내 것으로 만들 테야. 그리고 가 게도 하나 사서 그 안에 천사가 그려진 술병으로 가득 채울 거야. 아무에게 도 주지 않을 거야. 나는 잔뜩 심술이 나서 오렌지나무에 기대어 앉은 채 마음을 달랬다. "제제, 좀 있으면 이 누나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마음이 풀릴거야." 글로리아 누나는 씩 웃더니 가버렸다.
나뭇가지로 땅을 헤집고 있자니 차츰 울적함이 풀어져 갔다. 그때 내 마음 속 어디선지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너의 누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 "그래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틀리고 다른 사람은 모두 옳지." "그렇지는 않아. 네가 날 자ㅅ히 살펴보면 달라질 거야."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린 오렌지나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내가 모든 것들과 특히 나무하고도 얘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놀라운 일이고 신기하기만 했다. 나는 글너 나의 이상한 행동들이 모두 내
마음 속에 있는 작은 새가 옮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무야, 바로 네가 말을 하고 있는 거니?" "그래, 듣고 있는 것도 나야." 그리고 나무는 조용히 웃었다. 난 너무 놀라서 하마터면 소리치며 뛰쳐나 갈 뻔했지만 호기심 때문에 그대로 있었다. "나무야! 도대체 넌 어디로 말을 하니?" "나무는 몸 전체로 말을 해. 잎, 가지와 그리고 뿌리로도 한단다. 들어 볼 래? 네 귀를 나의 몸에 대봐. 그러면 내 가슴이 뛰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나는 잠시 망설였지만 나무가 어리고 작다고 생각하니 안심이 되어 귀를
나무에 대어보니 그 속에서 뭔가 툭 --- 툭 하는 소리가 정말 들려왔다. "제제, 들었지?" "나무야, 한 가지만 물어볼께. 누구든지 너와 말할 수 있니?" "아니야, 제제. 너하고 뿐이야." "정말이니?" "맹세할 수 있어. 어떤 요정이 나에게 너와 같이 조그만 아이의 친구가 되 면 말을 하게 되고 또 행복해지게 된다고 말했어." "나무야. 나를 조금만 기다려줄 수 있겠니?" "기다리다니? 뭘?" "내가 이곳으로 이사를 오려면 일주일 정도 있어야 해. 그때까지 말하는 걸 잊지 않을 수 있어?"
"그래, 절대로 잊지 않을께. 너를 위해. 내가 얼마나 부드러운지 볼래? 제 제?" "어떻게?" "그럼 내 가지에 올라타봐." 나는 나무가 시키는 대로 했다. "자, 됐어. 가지를 흔들면서 눈을 감아봐." 나는 역시 시키는 대로 했다. "제제, 어떠니? 기분이 아주 좋지? 이처럼 좋은 망아지를 가져본적이 있니 ?" "없었어. 아주 훌륭해. 내 달빛 망아지는 동생 루이스에게 줄 거야. 아마 너도 그 녀석을 좋아하게 될 거야."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오렌지나무를 쓰다듬으며 내려왔다.
"가야해! 거리고 이사 오기 전이라도 시간이 있으면 또 올께. 이제 난 가 봐야해. 식구들이 저기 나오고 있잖아?" "친구야! 이렇게 헤어지긴 싫은데?" "쉿! 저기 글로리아 누나가 온다." 내가 나무를 껴안고 작별을 하고 있을 때 누나가 다가왔다. "잘있어, 친구야!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나무야." "제제, 내가 말했지?" "누나 말이 맞았어. 이젠 누나와 나무와 형의 나무랑 바꾸자고 사정을 해 도 바꾸지 않을 거야." 누나는 나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오! 귀여운 머리. 귀여운 녀석!"
누나와 나는 손을 잡고 그 집을 나왔다. "누나! 누나의 나무는 좀 바보 같지 않아?" "글쎄, 약간 그런것 같긴 한데." "그럼 또또까 형의 나무는 어떄?" "그건 아마 쓸모가 없을 것 같아. 그런데 왜 묻니, 제제?" "지금 당장은 얘기해줄 수 없어도 언젠가는 누나에게만 나의 기적을 말해 줄 거야."
 
 
 
3장. 가난으로 찌든 손가락

내가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나의 걱정들을 얘기했을 때 아저씨는 퍽 진지하 게 대해 주셨다. "네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거냐?"
"그래요, 아저씨. 이사할 때 루씨아노가 함께 가지 않을까봐 걱정이 돼요." "제제, 넌 그 박쥐가 너를 그렇게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있니?" "그럼요!" "자신있게 대답할 수 있니? 진심으로?" "물론이죠. 틀림없어요." "그래? 그렇다면 그 박쥐는 꼭 함께 갈 거야. 좀 늦을지는 몰라도 얼마 후 엔 꼭 너의 이사한 집을 찾아갈 거야." "난 벌써 박쥐에게 우리가 이사할 집의 주소를 가르쳐주었어요." "잘했구나. 그렇다면 더욱 찾아가기 쉽겠지만 만약 가지 못한다면 그건 다
른 약속이 있기 때문일 거야. 그때는 가지 형제나 친척들을 보내게 될 거 야. 그래도 너는 다른 박쥐란 걸 눈치채지 못할거야." 그래도 나는 걱정이 된다. 루씨아노가 글을 읽을 줄 모른다면 주소를 가르 쳐주었어도 아무 소용이 없잖아. 작은 새들이나 사마귀나 나비에게 물어서 온다면 참 좋으련만...... "제제, 걱정하지 마라. 박쥐에게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감각이 있단다." "네? 뭐가 있다구요?" 아저씨가 방향감각이 무엇인지 자세히 가르쳐주셨을 때 나는 아저씨의 지
식에 새삼 놀라게 되었다. 나의 고민거리가 다 없어졌기 때문에 나는 우리 가 이사가게 된다는 사실을 이웃들에게 얘기를 해 주려고 거리로 나왔다. 어른들은 모두들 잘 된 일이라고 말했다. "제제, 너의 집 이사한다면서? 잘 된 일이구나. 넌 참 좋겠구나, 응?" 그런데 기뻐하지 않는 한 사람은 비리낑뉴였다. "제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자주 놀러오고 사이좋게 지내자꾸나. 그리고 참! 내가 말했던 얘기 생각해 봤니?" "그게 언제라고 했지? 비리낑뉴?"
"내일 오전 8시에 <방구>시내 오락장 앞에서야.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 으니 주인이 장난감을 한 트럭 사오라고 했다는 거야. 너도 함께 갈래?" "루이스를 데리고 갈께. 그런데 나도 얻을 수 있을까?" "그럼! 네가 벌써 어른이 된 줄 아니? 요 꼬마녀석아?" 그가 내 곁에 다가왔을 때 나는 아직도 어리고 작다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 다. 그것도 비리낑뉴보다도 훨씬 작다는 사실을 말이다. "정말 얻을 수 있을까? 얻고 싶어. 그럼 내일 아침에 거기서 만나자." 나는 집에 돌아와 글로리아 누나 곁에서 맴돌았다. "제제, 너 무슨 일이니?"
"누나! 내일 아침에 루이스와 나를 시내에 있는 <방구> 오락실 앞까지 좀 데려다주면 좋겠는데. 장난감을 가득 실은 트럭이 온대." "제제, 누나는 내일 너무도 할 일이 많아. 옷도 다려야 하고 이삿짐을 꾸 리는 잔디라 언니도 도와야 하고 또 밥도 지어야 하고......" "<레알렝고> 시에서 사관생도들이 많이 온대." 글로리아 누나는 루디라고 부르는 영화배우인 루돌프 발렌티노의 사진을 사진첩에 모으는 것 외에도 사관생도라면 무작정 좋아하는 버릇이 있다. "아침 일찍 사관생도들이 오는 걸 어디서 봤니? 이 뚱딴지 같은 녀석아.
까불지 말고 나가서 놀기나 해." 누나는 때리기라도 하려는 기세로 나왔지만 난 가만히 있었다. "누나! 난 괜찮아. 하지만 루이스에게 데리고 가겠다고 벌써 약속을 했단 말야. 루이스는 아직 어리잫아. 그만한 또래의 애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생 각만 한단 말이야." "이 녀석아, 내가 못간다고 몇 번이나 말했니? 그리고 네 말은 모두 핑계 야. 네 녀석이 가고 싶으니 그러는 거지? 살아가노라면 크리스마스는 매년 있는 거야." "누나! 내가 만일 죽는다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도 받지 못하고 죽어버 린다면 어떻게 해?"
"넌 일직 죽지 않아. 아마 모르긴 해도 에드문드 아저씨나 베네디뚜 씨의 두배는 더 살 걸. 자, 이제 그만 귀찮게 하고 나가서 놀아, 응?" 그래도 나는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계속해서 누나를 귀찮게 했다. 누나가 일어서면 나는 흔들의자에 앉아 애원하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애 원하는 듯한 눈은 누나에게선 언제나 좋은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의자에 계속 앉아 누나가 우물에 물을 길러 가는 것을 보고 있었으며, 또 방으로 빨래감을 가지러 들어오면 침대에서 턱을 받치고 누나를 바라보았
다. 견디다 못한 누나가 폭발하고 말았다. "제제, 너 몇 번이나 얘기해야 말을 듣겠니? 더 이상 화나게 하지 말고 나 가서 놀기나 해." 누나의 호통에도 난 그대로 버티고 앉아 있었다. 누나가 어떻게 나오더라 도 나가지 않겠다고 속으로 다짐했기 때문에 꼼짝하지도 않았다. 그러자 누 나는 나를 번쩍 안아서 문 밖으로 나가 뒤뜰에 내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과 문들을 모두 잠가버렸다. 그래서 난 할 수 없이 집안 이쪽저쪽을 돌 아다니며 창문으로 누나를 쫓아다니며 쳐다보았다. 그때 먼지를 털고 방을
정리하던 누나가 나를 보자 이번엔 창문마저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안쪽에 서 창문을 모조리 잠가버렸다. 이제 창문이란 창문은 열려 있는 곳이 없었 다. "야, 이 악마야! 털이 빠진 러시아 고양이야! 넌 사관생도한테 절대 시집 가지 못할 걸. 난 네가 가죽 장화도 닦아 신을 여유가 없는 쫄병한테 시집 가길 빌겠어." 공연히 시간만 버린 것 같아 난 한 마디 쏘아붙이고 밖으로 나와 놀기로 했다. 길거리에 나오니 나르디뇨가 웅크리고 앉아 넋이 나간 듯 뭔가를 들
여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처음 보는 큰 딱정벌레가 성냥갑속으로 만 든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와!" "굉장히 크지? 어때?" "나랑 바꾸자." "뭐하고?" "나한테 그림딱지가 있는데 그것하고." "몇 장하고?" "두 장하고." "제제, 이렇게 큰 딱정벌레와 겨우 딱지 두 장하고 바꿔?" "그까짓 딱정벌레는 에드문드 아저씨 담벽에도 많아." "그럼 세 장하고 바꾸자." "그래, 그 대신 고르면 안 된다." "그건 싫어. 두 장 정도는 골라 가져야지." "좋아." 내게 <라우라 라 블란따>는 여러 장 있어서 그걸 한 장 주고 나머지는 <후
드 깊슨>과 <퍼스머 루스밀러>를 골라 가져갔다. 난 딱정벌레를 호주머니에 넣고 그곳을 떠나왔다.
* * *
"빨리 해, 루이스!" 글로리아 누나는 빵을 사러 가게에 갔고 잔디라 누나는 의자에서 책을 읽 고 있었다. 난 루이스가 오줌누는 것을 거들어주고 나서, 우물가로 가서 우 리는 세수를 하고 나서 방으로 들어왔다. 루이스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양말 을 신겨주었다. 그리고 단추를 채워주고 빗을 찾아 머리도 예쁘게 빗겨 주
려 했으나 머리는 차분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난 생각 끝에 포마드를 바르 려고 했으나 끝내 포마드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부엌에 가서 돼지기름을 조 금 손에 묻혀 냄새를 맡아 보았다. "약간 냄새가 나긴 해도 괜찮구나." 루이스의 머리에 돼지기름을 바르고 빗질을 하니 머리는 아주 단정해서 머 리통이 등에 양텅을 뒤집어 쓴 성 조앙같이 보였다. "루이스! 머리 헝클어지지 않게 가만히 있어. 나도 옷을 갈아입을께." 바지와 하얀 셔츠를 입는 동안에도 나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루이스! 정말 귀엽고 예쁘구나. <방구> 시에서 아마 너만큼 예쁜 애는 없 을 거야." 나는 옷을 갈아입은 뒤 다음 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신어야 할 운동화를 신으면서도 동생을 바라보았다. 너무나 깜찍하고 예뻤기 때문에 마치 어릴 때의 소년 예수처럼 보였다. 루 이스는 선물을 많이 얻을 수 있을 거야. 동생을 바라보는 사람이면 틀림없 이...... 글로리아 누나는 식탁에서 상을 차리고 있나 보다. 빵을 사온 날 에는 포장지 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었다. 난 루이스의 손을 잡고 누나에게 다가갔다.
"누나! 루이스 아주 예쁘지? 내가 해 줬어." 난 누나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아무 말없이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볼 뿐 이었다. 누나가 고개를 내렸을 때 두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제제, 너도 아주 예쁜걸." 누나는 무릎을 굽혀 나의 머리를 가슴에 안으며 말했다. "오! 산다는 것이 우리에겐 왜 이토록 힘이 드는 걸까?" 누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우리들의 옷매무새를 다정스럽게 고쳐주었다. "난 너희들을 시내에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했지? 지금도 마찬가지야, 제
제. 누난 할 일이 많아. 우선 식사를 해. 그리고 생각을 해 보자. 나는 같 이 가고 싶어도 몸치장 할 시간이 없어." 누나는 커피가 담긴 손잡이가 있는 컵을 앞에 갖다논 다음 빵을 썰었다. 그러면서도 안타까운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그까짓 좋지도 않은 장난감을 얻으려고 저렇게 애를 쓰다니, 그리고 그들 은 가난뱅이에게 골고루 장난감을 나누어줄 수도 없을 텐데......" 누나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래, 이러한 기회가 다시는 없을지도 몰라. 너희들이 간다고 하니 말릴
수도 없고. 그러나 어떻게 하지? 너희들이 너무 어려서 너희들만 보낼 수도 없고......" "누나! 걱정마, 내가 데리고 갈께. 손을 꼭 잡고 가면 되잖아. <리오-상파 울로>의 건널목을 건너지 않아도 되니까." "제제, 그래도 위험해." "괜찮아, 누나. 난 방향감각이 있거든." "누구에게 그런 말을 배웠니?" "에드문드 아저씨한테 들었는데 루씨아노는 그런 감각이 있대. 난 루씨아 노보다 크니까 감각이 더 많을 거 아냐?" "그렇다면 잔디라 언니에게 말해 볼까?" "그냥 나둬. 잔디라 누나는 책이나 읽고 애인이나 생각하며 아무것도 상관
하려고 하지 않아." "그러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식사를 하고 밖에 나가서 그 쪽으로 가는 사 람이 있으면 너희들을 데리가 달라고 부탁할께......" 나는 늦을까봐 방을 먹고 싶지도 않았다. 누나를 따라 밖에 나가 기다렸지 만 아무도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시간만 흘러갔다. 그때 한 사람이 지나갔 다. 우체부 빠이샤 아저씨다. 아저씨는 모자를 벗어 흔들어 보이며 누나에 게 인사를 했다. 글로리아 누나는 아저씨에게 우리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을 하였고 아저씨는 누나의 부탁을 들어주셨다.
누나는 동생과 나에게 차례로 볼에 키스해 주며 조금 안심이 된다는 듯 웃 으며 말했다. "요 녀석아! 머리가 벗겨진 군인과 가죽구두가 어떻다고?" "누나, 그건 농담이야. 누나는 꼭 어깨에 별이 여러 개 달린 공군과 결혼 하게 될 거야." "제제, 그런데 왜 또또까 형과 같이 가지 않니?" "또또까 형은 가시 싫대. 우리와 같이 가는 게 귀찮아서겠지 뭐." 우리는 길을 떠났다. 우체부 아저씨는 앞서 가면서 집집마다 우편물을 나 눠주며 가셨다. 그러면서 우리와 같이 가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 <리오-상
파울로> 거리에 다다르자 아저씨는 웃으시며 말했다. "제제, 난 너무 바빠서 안 되겠구나. 너희들 때문에 아저씨의 일이 늦어져 요. 이제 위험한 곳은 없으니 너희들끼리 저쪽으로 가도록 해라." 그리고는 우편가방을 메고 급히 가버렸다. 곰곰히 생각을 해보니 화가 났 다. "바보 고양이 같은 녀석! 누나에게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길거리에 애들을 버리고 그냥 가다니." 나는 할 수 엇이 동생의 손을 꼭 쥐고 걸어갔다. 나의 걸음도 점점 느려지 기 시작했고 동생은 벌써부터 피곤한 기색이 보이기 시작했다.
"루이스, 힘을 내. 다 왔어. 그곳에는 장난감이 많아." 그 말을 듣고 걸음이 조금 빨라지더니 다시 처지기 시작했다. "형! 다리 아파." "그럼, 내가 조금만 업어 줄까?" 루이스는 팔을 벌려 나의 등에 업혔다. 그애는 마치 납덩이처럼 무거웠다. <쁘로그레수> 거리에 오자 나도 헐떡거리기 시작해서 루이스를 내려서 걷게 했다. "루이스, 조금만 걸어가." 그때 교회의 종소리는 8시를 알리고 있었다. "어떡하지? 그곳에 일곱시 반까지는 가야 했는데, 하지만 트럭에 가득 싣
고 온다고 했으니까 사람들이 많이 왔다고 해도 상관이 없을 거야." "형, 이제 발이 아파." 나는 동생의 발을 내려다 보았다. "신발 끈을 조금 느슨하게 해 보자." 동생과 나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만 갔다. 한참만에야 겨우 시장근처에 다 다랐고 또 한참 후에 국민학교 앞을 지나 <방구> 오락장을 돌아서 도착했 다. 동생과 내가 기진맥진하여 그곳에 도착하니 그곳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도 모두 자리를 떠난 후였다. 장난감을 쌌던 구겨진 포장지만 길거리에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꼬끼뉴 아저씨! 벌써 선물을 나누어줬나요?" "그래, 다 끝났다. 제제, 네가 너무 늦게 왔구나. 사람들이 홍수처럼 몰렸 었는데......" 아저씨는 문을 반쯤 내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구나. 내 조카들에게 줄 것도 남기지 못했는걸." 아저씨는 문을 마저 닫고 길거리로 나왔다. "제제, 너무 실망하지 말고 다음엔 조금 서둘러서 오도록 해라. 일찍 일어 나서 말야, 알겠니?" "염려마세요, 아저씨." 나는 아저씨에게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실망이 컸으며 속았다는
기분에 슬펐으며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루이스, 여기 좀 앉아서 쉬어가자." "형, 목말라." "루이스, 로젠버그 아저씨 가게에서 물을 한 컵 달래서 둘이 함께 마시자." 그때서야 루이스는 비극을 눈치챈 듯했다.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더니 눈을 하얗게 뜨고 나를 흘겨보면서 입을 불쑥 내밀어 보였다. "루이스! 걱정하지마, 너 내 달빛 망아지 봤지? 또또까 형에게 손잡이를 고쳐달라고 해서 너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줄께. 응?" 동생은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루이스, 울지마. 넌 왕이야. 아버지가 네게 루이스라고 세례명을 주신 건 루이스가 왕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야. 왕이 길가에서 그것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울면 되겠니?" 나는 동생의 머리를 가슴에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루이스, 내가 이 다음에 크면 마누엘 발라다리스 씨의 자동차와 같은 아 주 멋진 차를 사줄께. 아니, 그보다 멋진 걸로 사줄 테니까 너 혼자만 갖도 록 해, 응? 자, 이젠 울지마. 왕들은 울지 않는 거야." 내 가슴은 슬픔과 쓰라림으로 터져버릴 것 같았다.
"꼭 사준다고 약속할께. 사람을 죽인다거나 훔치지 않고 말야." 지금 하는 내 말은 진실한 마음이 하는 소리였지 결코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새의 소리가 아니었다. '왜 이래야만 하는 걸까? 어째서 착한 아기예수는 나를 싫어하지? 외양간 의 황소나 당나귀 새끼까지 좋아하면서 왜 나만 싫어하는 걸까? 그는 내가 악마와 같은 어린애라서 내 동생에게 선물을 주지 않는 걸까? 만약 벌을 주 는 거라면 이렇게 천사와 같이 착한 내 동생에겐 옳지 않은 일이야. 하늘에
사는 천사들도 우리 루이스처럼 착하지는 않을걸......' 그런 생각을 하자 바보처럼 눈물을 흘러내렸다. "형, 왜 울어.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흘리는 거야. 난 너처럼 왕도 아니잖아. 난 아무 데도 쓸데없는 나쁜 애, 그리고 못된 애, 그래서 눈물이 나는 거야."
* * *
"또또까 형, 새 집에 또 가본 적이 있어?" "아니, 가본 적 없어, 넌?" "난 틈만 있으면 자주 가." "그건 왜?" "밍기뉴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야." "밍기뉴란 또 어떤 악마지?" "그건 내 라임오렌지나무야."
"썩 좋은 이름이구나! 너는 그런 생각을 해내는 데는 아주 천재야." 형은 빙그레 웃으면서 나의 달빛 망아지를 상상해 보는가 보다. "그래 그 나무는 어떠니?" "좀처럼 자리지 않는 것 같아." "제제, 아무 때나 늘 그렇게 바라보고 있으면 자라지 않는 것 같은 거야. 그리고 자라는 것을 알 수가 없어. 어때, 이 손잡이가 네가 바라는 손잡이 로 됐지?" 또또까 형은 달빛 망아지를 들어보였다. "그래 형! 형은 어떻게 뭐든지 그렇게 잘 만들지? 닭장, 새장, 울타리와 문짝까지 말야."
"제제, 그건 모든 사람이 다 나비넥타이를 맨 시인이나 박사가 되려고 태 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야. 그러니 너도 배울 생각이 있으면 배울 수 있 어." "형, 난 못할 거야. 그런 걸 잘 하려면 소질이 있어야 되잖아." 형은 잠시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에드문드 아저씨의 말씀을 부정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부엌에서는 딘디냐 할머니께서 포도주에 적신 식빵을 만들고 계셨다. 그 빵은 크리스마스 만찬에 쓸 것인데 우리집은 그게 고작이었다. 나는 또또까 형에게 불평을 해댔다.
"제제, 그것마저 없을 뻔했어. 내일 점심에 과일사라다를 만들어 주도록 돈을 주신 분도 바로 에드문드 아저씨란 말이야." 또또까 형은 오락장 앞에서 루이스와 내가 겪었던 일을 알고 있었기 때문 인지 열심히 내 일을 해 주고 있었다. 크리스마스 때 적어도 루이스만은 내 가 쓰던 낡은 것이지만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내가 제일 아 끼고 사랑했던 달빛 망아지를 말이다. "또또까 형!" "응?" "크리스마스 날 정말 우린 선물을 받지 못할까?" "아마 못 받게 될 거야."
"솔직하게 말 좀 해봐, 형도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나를 아주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아니야. 나쁜 애는 아니야. 문제는 네 핏속에 악마의 기질을 다분히 갖고 있다는 것이야." "그래서 이번 크리스마스엔 그 악마가 나가 주었으면 좋겠어.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지금의 악마 소년에서 착한 아기예수가 내 마음속에 태어났 으면 해. 그렇게 기도할 거야." "제제, 혹시 아니. 내년에라도 태어날는지. 그렇게 자세히 알려고 하지 말 고 나처럼만 해봐." "어떻게 형?"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를 않잖아. 그래야만 기분도 상하지 않는거야. 아기 예수도 모든 사람들이 말하듯 그리 좋은 애는 아니야. 신부님도 천주교리가 가르치는 대로 꼭 실천하시지는 않잖아?" 형은 말을 잠깐 멈추고,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말해야 좋을지를 망설이는 것 같았다. "형, 무슨 소리야?" "좋아, 말하지. 너는 장난꾸러기라서 선물을 받지 못한다고 하자. 그렇지 만 루이스는 어떻지?" "루이스는 천사같은 애야." "그럼 글로리아 누나는 어떠니?" "누나도 마찬가지야."
"음...... 형은 가끔 내 물건을 빼앗아 가긴 해도 착한 편이야." "그리고 잔디라 누나는?" "그저 그런 편이야. 나쁘진 않아." "그래? 도 라라 누나는 어떠니?" "때릴 땐 아주 아프게 때리지만 그래도 역시 좋아. 언젠가는 내 나비넥타 이를 만들어 줄 거야." "또 엄마는?" "엄마는 너무 좋아. 나를 때릴 때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서인지 아프지 않 게 살살 때리시거든." "아빠는 어떻구?" "아빠에 대해선 잘 모르겠는데. 아빠는 운이 없는 분 같아. 나처럼 우리 식구들 중에서는 악마같은 사람일지도 몰라도."
"그렇다면 네 말처럼 우리 식구들은 모두 착한 사람들이구나. 그런데 왜 아기예수는 우리 식구에서 잘 해주지 않느냐 말야. 화울라베르 박사집에 가 봐. 음식이 가득 차려진 식탁이 있어. 빌라보아스댁도 그렇고 라이문드 빼 즈 댁은 말할 것도 없어." 난생 처음 또또까 형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래서 내 생각엔 아기예수는 가난하게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서만 태어났다고 생각해. 조금 자란 소년예수는 부자들만을 소용있는 사람들로 보았던 거야. 제제, 이제 이런 말은 그만해 두자. 이런 말을 하면 죄가 된 데."
형은 풀이 죽어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고개를 숙인 채 망아지만 쓰 다듬고 있었다.
* * *
그날, 우리 식구들로서는 얼마나 가슴 아픈 만찬이었는지 다시는 생각조차 하기 싫은 울적한 성탄의 만찬을 대하고 있었다. 축복을 알리며 제야의 종 소리가 들려올 때 모두들 말없이 식사를 했고 아빠는 면도조차 하지 않은 채로 새벽 미사에도 참석치 않으셨고 식빵을 조금 맛보는 정도이셨다. 더욱 슬펐던 것은 아무도 얘기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
기예수의 축복된 탄생이 흡사 우리집에서는 추도식같은 분위기로 감돌았다. 아빠는 모자를 집어들고 말도 없이 슬리퍼를 신으신 채 나가버리셨다. 아 빠가 왜 즐거운 크리스마스라고 한 마디 말도 하지 못하셨는지 알 것 같다. 딘디냐 할머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며 에드문드 아저씨에게 돌아가 자고 말씀하셨다. 에드문드 아저씨는 또또까 형과 나의 손에 500레이스 짜 리 은화를 쥐어 주시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아마 돈을 더 주고 싶으나 돈이 없으셨거나 아니면 아저씨의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했던 돈이었는
지도 몰랐다. 난 아저씨를 껴안아드렸다. 그것이 성탄절 밤의 유일한 포옹 이었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버리셨다. 아마 방에서 혼자 울고 계시겠지. 식구들 모두가 울적하고 슬픈 표정들이었다. 라라 누나는 에드문드 아저씨 와 딘디냐 할머니를 배웅해 드렸다. 그리고 두 분이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서 중얼거렸다. "딘디냐 할머니와 아저씨께서는 너무 늙으셔서인지 만사에 지쳐버리신 것 같아." 깊어가는 성탄절의 밤에 교회에 종소리가 멀리 울려퍼지고 밤하늘을 꽃으
로 수놓는 폭죽은 성탄을 축복하는 이웃들에게는 행복한 밤이 되었지만 우 리집 식구들에겐 가장 슬펐던 밤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글로리아 누나와 잔디라 누나는 설겆이를 하고 있었다. 누나들은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충혈되어 있으면서도 우리에게는 애써 보 이지 않으려 하면서 말을 했다. "얘들아! 이제 밤이 깊었구나. 자야 할 시간이야." 그리고는 우리을 둘러보며 이곳에는 더이상 아이들이 없다는 것을, 슬픔을 맛본 어른들만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성탄절밤에 쓰디 쓴 서러움을 맛본 비참한 사람들뿐이었다.
이 모든 불행의 원인은 전기회사에서 전기를 끊어버려 대신 밝혀놓은 등불 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일 거야. 그래서 그런 거야. 우리집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잠들어 있는 어린 루 이스 왕자님이었다. 나는 동생 루이스의 발 밑에 달빛 망아지를 놓아 주었 다. 귀여운 루이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조용하게 속삭였다. "귀여운 녀석......" 등불이 꺼져 어둠이 온통 휩싸인 속에서 나는 형에게 물었다. "오늘 식빵 맛있었어, 또또까 형?" "모르겠어. 한 입도 먹어보지 않았으니까." "형, 왜?"
"목에 무엇이 걸린 것 같아서 아무것도 삼킬 수가 없었어. 제제, 이제 잠 이나 자자. 잠이 들면 모두 잊게 되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제, 어딜 가려고 그러니?" "문 밖에 운동화를 내놓으려고." "그냥 놔둬. 그러지 않는 게 좋아." "아니야, 밖에 놓아 볼 거야. 혹시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 형! 난 선물을 갖고 싶어. 단 하나만이라도 새 것으로 그리고 나만을 위한 선물을 말야." 나의 말을 들은 형은 반대쪽으로 돌아누워 배게 빝에 머리를 묻어버렸다.
* * *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형을 불렀다. "형, 같이 나가 볼까?" "너 혼자 가 봐." "그래, 나가 볼께." 난 방문을 열고 나갔다. 하지만 실망한 나를 기다리는 듯 운동화는 텅 비 어 있었다. 또또까 형이 눈을 비비며 따라나왔다. "그것 봐, 제제. 내가 뭐라고 했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허전한 마음이 나를 울렸고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은 증오와 슬픔 바로 그것이었다. 난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고 말 았다. "왜 우리는 가난한 아빠를 갖고 있는 걸까?"
이렇게 말하며 운동화를 바라보는데 나의 눈 앞에 슬리퍼가 보였다. 아빠 가 나를 쳐다보고 계셨다. 아빠의 눈은 슬픔으로 젖은 채 커져 있었으며 마 치 <방구> 시내에 있는 영화관의 화면같이 보였다. 너무 슬퍼서 울고 싶어 도 울지 못하는 쓰라린 마음으로 나를 바라보시다가 조용히 지나가셨다. 형 과 나는 아무 말도 못한 채 그냥 서 있기만 했다. 아빠는 옷장 위에 있던 모자를 집어들고 말없이 나가버리셨다. 그때서야 형은 내 팔을 때리면서, "제제, 넌 나쁜 녀석이야. 뱀같이 고약한 녀석. 그러니까......"
화가 치민 형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형! 난 아빠가 거기 계시는 줄 몰랐어." "나쁜 녀석, 인정도 없는 바보. 너도 아빠가 오래 전부터 놀고 계시는 걸 알고 있잖아. 그래서 난 어제 밤 아빠의 얼굴을 보면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던 거야. 너도 어른이 되어 아빠가 되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 픈 것인지 알게 될 거야." 난 형의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난 아빠를 못 봤단 말야. 형, 정말이야." "내 곁에서 없어져. 넌 정말 쓸모없는 나쁜 놈이야. 어서 꺼져!"
나는 밖으로 뛰어 나가 아빠의 다리를 붙잡고 실컷 울고 싶었다. 난 나쁜 놈이며 잘못했다고 말씀드리며 용서를 빌고 싶었다. 그러나 난 무엇을 어떻 게 해야 할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다가 침대에 주저앉아 구석에 놓여있는 텅 빈 운동화를 바라보았다. 지금 내 마음이 붕 뜨고 텅 비어 있는 것처럼 그렇게 비어만 있었다. "왜 내가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 그랬을까? 그렇지 않아도 모두들 오늘따 라 슬퍼하고 있는데, 점심 식사 땐 아빠를 어떻게 쳐다보지? 그땐 난 과일 사다라조차 삼키지 못할 거야."
아빠의 슬프고 커다란 눈이 영화관의 화면처럼 공중에 매달려 나를 바라보 는 것만 같았다. 발꿈치로 구두통을 차다가 퍼뜩 한 생각이 내게 떠올랐다. 그래! 그렇게 하면 아빠가 나를 용서해 주실지도 몰라. 나는 또또까 형의 구두통에서 구두약을 꺼냈다. 그리고는 구두통을 챙겼 다. 그리고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은 채 구두통의 무게도 잊은 듯 거리로 나왔다. 나는 마치 아빠의 슬픈 눈 위를 고통을 주면서 걷는 것 같았다. 아직은 이른 아침이었기에 어른들은 자정미사나 만찬 등으로 모두들 자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는 아이들만 몰려나와 장난감을 비교하기도 하고 자랑 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가게에서 사기도 하며 놀고 있었다. 이러한 눈 앞의 광경들이 나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했다. 행복한 저 애들은 모두 착한 애들 이겠지. 누구도 나와 같은 행동을 한 아이는 없을 거야. 나는 미제리아 이 포미(재난과 기아) 가게 부근에서 손님이 있나 보려고 다가갔다. 이 상점은 오늘 같은 날에도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재난과 기아라는 간판을 달게 된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곳에는 슬리퍼나 파자마를 입고 있
는 사람은 있으나 구두를 신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아침을 굶었는데도 배는 조금도 고프지 않았다. 내 마음의 고통에 비하면 배고픈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배가 고파지면 내 마음은 더 아파지는 것이다. <쁘로그레수> 거리까지 나와 시장을 한 바퀴 돈 다음 로젠버그 씨 댁 빵집 앞에 앉아서 손님을 기다렸다.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는데 돈은 한 푼도 벌지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날씨가 점점 더 뜨거워지자 어깨에 맨 구두통이 어깨를 쓰라리게 만들어
여러 번 구두통을 바꿔 메야만 했다. 목이 타서 공동수도가로 가서 물을 마 셨다. 그리고는 내가 입학하게 될 국민학교 교문 앞 층계에 주저앉았다. 그 리고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온 몸의 맥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서 나 는 인형처럼 무릎에 얼굴을 기댄 채 앉아 있었다. 아니, 할 일을 잊어버린 사람처럼 아예 얼굴을 무릎에 묻어버리고 앉아 있었다. 생각대로 하지 못하 고 돌아가느니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구두통을 툭 치면서 낯익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기에 얼굴을
들어보니 오락장에서 일하시는 꼬끼뉴 아저씨였다. "이놈아! 구두닦이가 돈을 벌지 않고 잠만 자면 어떡하니?" 아저씨가 구두통 위에 발을 얹어놓자, 난 우선 헝겊으로 문지르고 구두를 적신 후에 조금 마른 다음 구두약을 조심스럽게 발랐다. "아저씨! 죄송하지만 바지를 조금 올려주시겠어요?" 아저씨는 나의 요구대로 응해 주셨다. "오늘은 구두를 좀 닦았니?" "아뇨. 오늘은 아무도 닦질 않아요." "그럼 크리스마스는 어떻게 보냈니?" "그저 그랬어요." 내가 구두통을 솔로 두드리자 아저씨는 발을 바꾸어 올렸다. 나는 같은 방
법으로 다른 한 쪽의 구두를 다 닦고 나서 통을 두드리자 아저씨는 발을 내 려 놓으시며, "얼마니, 제제?" "200레이스예요." "왜 200레이스만 받지? 다른 애들은 400레이스를 받는데." "제가 일류 구두닦이가 되면 그렇게 받겠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게 못 받아요." 아저씨는 500레이스짜리 지폐를 주셨다. "아저씨, 다음에 주세요. 거스름돈이 없는 걸요." "됐다. 나머지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주는 것이니 네가 갖도록 해라. 그럼 도 만나자 제제." "메리 크리스마스, 아저씨!"
아저씨는 사흘 전에 있었던 일 때문에 내가 구두를 닦으러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주머니 속에 돈이 좀 생기자 다시 기운이 나고 용기가 생겼다. 어느덧 오 후 2시가 넘으니 사람들의 왕래를 많아졌으나 손님은 없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녀도 먼지를 털어 달라는 사람조차 없었다. <리오-상파울로>의 도로 변 전봇대에 기대어 서서 작은 소리로 외쳐 봤다. "손님, 구두 닦으세요." "구두 닦으세요. 아저씨! 가난한 사람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와주세요."
그때 저쪽에서 멋있는 차 한 대가 다가오더니 멈추어 섰다. 나는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소리를 쳐봤다. "선생님! 가난한 살마들의 크리스마스를 도와 주세요." 옷은 잘 차려입은 부인과 어린아이들이 차창 밖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 다. 그 부인은 동정어린 목소리로, "쯧쯧, 가엾기도 해라. 저렇게 어린애가. 여보 저 애에게 뭘 좀 도와주세 요." 그러나 남편인 아저씨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쳐다보면서, "저런 아이들은 교활하고 나쁜 애들이야. 저 녀석은 자기가 어리다는 것과 크리스마스를 이용해서 동정을 바라고 있어."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은 도와 주고싶어요. 이러 오너라, 꼬마야." 부인은 지갑을 열더니 차창 너머로 손을 내민다. "고맙지만 받지 않을래요. 저는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고 정말 돈이 필요 하기 때문에 크리스마스 날 나온 거예요." 나는 구두통을 어깨에 메고 천천히 걸어갔다. 오늘은 화낼 기운도 없었다. 그러자 차의 문이 열리고 한 아이가 내게로 달려왔다. "자, 이거 받아! 엄마가 전해 주랬어. 우리 엄마는 네가 거짓말을 하지 않 는 걸 믿으신대." 그 아이는 나의 주머니에 500레이스 짜리 지폐를 넣어주고는 내가 고맙다
는 인사말을 건네기도 전에 달려가버렸다. 오직 자동차의 엔진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4시가 넘고 있었다. 아버지의 그 슬픈 눈은 아직도 나를 녹여 버릴 듯 나의 마음 속에 있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10또스땅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재난과 기아> 상점에서 싸게 주던가 모자라는 돈은 외상으로 해 주고 나중에 갚도록 해 줄지도 모른다. 어느 집 모퉁이를 지나고 있을 때 나의 시선을 끄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구멍이 뚫어진 여자용 스타킹이었다. 나는 스트킹을 주워 손에 감아 보니 무척 부드럽고 늘어지는 것이 뱀을 만들기에 훌륭했다. 스타킹을 구두 통에 집어 넣으면서 마음 속으로 오늘 같은 나른 장난을 치면 안 된다고 자 신과 싸웠다. '이 다음에 해야지. 오늘만은 장난을 말자.' 빌라보아스 댁이 가까워졌다. 그 집은 바닥이 전부 시멘트로 되어 있고 넓 은 정원도 있었다. 세르지뉴가 멋진 자전거를 타고 정원 사이를 돌고 있었 다. 나는 담장 사이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자전거는 빨간색이었고 부속들
은 팔나색이었고 노란 줄이 그어져 있었다. 자전거는 번쩍번쩍 빛이 나고 있었다. 세르지뉴는 나를 보더니 커브도 돌고 찌익찌익 소리를 내며 페달을 밟아 보이며 자랑했다. 그러더니 내게로 가까이 다가와서, "어때, 멋있니 제제?" "그래,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것 같아." "더 가까이 와서 봐." 세르지뉴는 또또까 형과 나이가 같았고 같은 반이었다. 나는 그의 에나멜 구두와 흰 양말, 빨간 가죽 허리띠를 보고 맨발인 내가 몹시 부끄러웠다. 거기다가 그의 구두는 모든 것을 반사시켰다. 심지어는 아빠의 눈까지도 그
반사되는 빛 속에서 번뜩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제제, 왜 그러니? 무슨 일이 있었니?" "아니야, 정말 멋진 자전거야, 형.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거야?" "그래 맞아." 그는 자랑을 더 하고 싶었는지 자전거에서 내리더니 대문을 열고 다가왔 다. "굉장한 선물을 받았어. 뭐냐면 전축 한 대, 양복 세 벌, 동화책 1세트, 색연필 1타스, 그리고 장난감도 큰 상자로 한 세트를 받았는데 그 속엔 프 로펠러가 달린 비행기와 하얀 돛단배가 들어 있었어."
나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인 채 또또까 형이 아기예수는 부자들만 좋아 한다던 말이 생각났다. "왜 그러니, 제제?" "아무것도 아니야." "참! 넌 선물 많이 받았니?" 난 대답할 기운도 없어 고개만 가로저었다. "정말로 하나도 받지 못했단 말이야?" "금년에 우리집은 크리스마스를 지내지 않기로 했어. 아빠가 아직도 놀고 계시거든." "아무렴 그럴 수가 있니? 그래서 밤이나 호도 그리고 포도주도 너의 집엔 없단 말이야?" "그저 딘디냐 할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식빵과 커피만 마셨어." 세르지뉴는 무슨 생각을 하더니,
"내가 만약 초대한다면 오겠니?" 나는 곰곰히 생각해 봤다. 비록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는 고프지만 그의 초대에 응해 줄 생각은 없었다. "들어가자 제제. 우리 엄마가 너를 위해 먹을 것을 준비해 주실거야. 과자 도 많이 있어." 그러나 난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지금까지 잘 참아왔고 더 이 상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마음의 상처를 더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나 는 예전에 이런 말을 들은 것이 생각났다. '더러운 깜둥이 녀석을 집안으로 끌어들이지 말라고 했잖니? 세르지뉴!' "싫어! 형의 말은 고맙지만 말야."
"그래! 그럼 우리 엄마한테 밤이랑 과자랑 싸달라고 한다면 가져다 루이스 줄래?" "안 돼. 난 일을 끝내야 돼." 그때서야 세르지뉴는 내가 앉아 있는 것이 구두통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제, 하지만 오늘 같은 날 누가 구두를 닦겠니?" "하루 종일 돌아다녔는데 10또스땅밖엔 벌지 못했어. 그중에 500레이스는 동냥으로 받은 거야. 아직도 2또스땅이 더 있어야 돼." "뭣에 쓰려고 그러니, 제제?" "말할 수 없어. 그러나 꼭 필요해." 세르지뉴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내 구두를 닦아 줄래? 10또스당을 줄 테니까."
"싫어. 난 친구에게선 돈을 안 받아." "그러면 내가 돈을 준다면? 그러니까 빌려 준다면 받겠니?" "조금 늦게 갚아도 돼?" "그래, 네 맘대로. 나중에 구슬로 갚아도 되니까." "그렇다면 빌려 줘." 세르지뉴는 주머니에서 2또스땅을 꺼내 주었다. "제제, 난 돈이 많이 있으니 걱정마. 아직도 저금통엔 돈이 가득 들어 있 어." 나는 자전거의 바퀴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정말 멋있는 자전거야." "네가 좀 더 커서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면 타게 해 줄께. 좋지?" "응. 정말 고마와."
* * *
나는 구두통을 메고 흔들며 <미제리아 이 포미> 상점으로 달려갔다. 나는 가게문을 닫지나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었다. "아저씨! 고급담배 남았어요?" 아저씨는 나의 손에 놓은 돈을 보고는 담배 두 갑을 집어주었다. "설마 네가 담배를 피우는 건 아니겠지, 제제?" 그때 뒤에서 누가 말했다. "어린이에게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보지도 않고 아저씨는 웃으며 대꾸를 한다. "그건 자네가 이 녀석을 모르기 때문에 그래. 이 녀석은 못하는 것이 없는 장난꾸러기야."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담배를 손에 굴리면서 마냥 기쁘기만 했다. "아저씨! 이게 좋을까요? 저게 좋을까요?" "그거야 네 맘이지." "하루 종일 아빠에게 선물을 사 드리기 위해 일을 했어요." "정말이냐? 제제, 아빠는 너에게 뭘 선물로 주셨는데?" "못 받았어요. 아저씨도 아시잖아요. 우리 아빠는 아직도 실업자라는 것 을. 지금 제 뱃속의 형편과 아빠의 형편이 똑 같은 걸요." "만약 아저씨께서 담배를 원한다면 어떤 담배를 고르시겠어요?" "물론 둘 다 좋아! 그리고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아빠들은 다 기쁜거란다."
"그럼 이걸로 싸주세요." 아저씨는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셨다. 아저씨는 감격한 듯한 표정을 지었고 가게에 있는 사람들도 이젠 말을 건네는 사람이 없었다. 포장한 담배를 내 게 주려다 아저씨는 잠시 머뭇거리신다. 무슨 말인가 하고 싶은 듯 하시더 니 아무 말도 하시지 못했다. 나는 돈을 지불하며 빙그레 웃었다. "아저씨! 크리스마스 기쁘게 보내세요." 나는 조금은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갔다. 집안엔 어둠이 깔려 있었고 부엌에선 등잔불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
다. 식구들은 모두 외출을 했는지 아빠 혼자 허공을 바라보신채 식탁에 팔 로 턱을 받치고 계셨다. "아빠!" "왜 그러니, 제제?" 아빠의 목소리에는 아무런 원망도 없어 보였다. "온 종일 어딜 갔었니?" 나는 구두통을 아빠에게 들어 보였다. 구두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주머니에 서 포장해 온 것을 꺼냈다. "아빠! 풀어보세요. 아빠에게 드리려고 선물을 샀어요." 아빠는 그것이 비싸다는 것을 아시고 놀라시더니 빙그레 웃으셨다. "어때요 아빠? 맘에 드세요? 제일 좋은 담배래요."
아빠는 흐뭇한 얼굴로 담배를 뜯어 냄새를 맡으셨다. 그리고 피울 생각도 하지 않으셨으며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한 개피 피워보세요, 아빠." 나는 부엌에 나가서 성냥을 가지고 와서 아빠의 입에 물린 담배에 불을 당 겨드리고 피우시는 것을 보기 위해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기분이 매우 착 찹해졌다. 불을 붙여드리고 난 성냥개비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나니 온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고 종일 괴롭혔던 고통이 산산조각 흩어지는 것 같았 다. 나는 수염을 깎지 않아 텁수룩한 아빠의 얼굴과 눈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
무 말도 하질 못하고 다만 울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아빠, 아빠......!" 내 목소리는 흐느낌 속에 점점 줄어들었다. 아빠는 나를 안아 주셨다. "제제, 울지 마라. 네가 마음이 이렇게 약하다면 일생 동안 울어야 할 날 들이 너무도 많을 거야." "그게 아니에요. 난 정말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려는 뜻으로 말한 게 아 니었어요." "알고 있다, 그래서 아빤 화도 내지 않았지 않니?" 아빠는 수건으로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아 주셨다. "이젠 됐지?" "네, 아빠! 이제 괜찮아졌어요."
나는 손으로 아빠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커다란 영화의 화면 같 았던 아빠의 눈을 지워버리듯 손으로 아빠의 눈을 쓰다듬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마음 속에 자리잡은 아빠의 큰 눈이 언제까지나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자, 피우던 담배를 마저 피워야지!" 나는 아직도 서러움에 목이 메어 말을 더듬었다. "아빠! 저를 때려 주세요. 가만히 맞기만 할께요, 아빠......" "아내야. 괜찮아, 제제!" 아빠가 나를 바닥에 내려 놓으셨을 때 나의 가슴 속의 한숨도 땅으로 가라 앉는 것 같았다.
아빠는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오셨다. "글로리아 누나가 너를 주려고 과일사다라를 조금 남겨두었단다." 나는 사라다를 입에 넣었으나 심킬 수가 없었다. 아빠가 곁에서 먹어주셨 다. "먹어라, 제제! 맛있지?" 나는 아빠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였으나 처음 몇 숟갈은 짠맛이 나는 것 같 았다. 눈물이 섞여 있는 사라다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4장. 새, 학교, 그리고 꽃

새로 이사 온 새집에서의 생활, 작은 희망, 그리고 아주 소박한 꿈.
날씨가 화창한 어느 날, 이삿짐을 나르는 아리스띠데스 아저씨와 그의 조 수가 이끄는 수레 위에 타고 새 집으로 오면서 마냥 기쁜 마음과 들뜬 희망 으로 가슴이 울렁거렸다. 수레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 <리오-상파울로>의 도로에 들어서자 아주 미 끄러지듯이 달렸다. 우리가 지나가는 수레 옆으로 마침 멋진 자동차 한 대 가 스쳐갔다. "야, 포르뚜깔 사람인 마누엘 발라다리스의 차가 가네." 우리가 <아스데스> 거리를 돌아 길을 건널 때 멀리서 기적 소리가 아침 공 기를 가르고 내 마음 속에 와 닿았다.
"아저씨! 저기 좀 보세요. 망가라띠바 기차가 지나가요." "제제, 넌 별걸 다 아는구나. 어떻게 알았지?" "기적소리만 들어도 알 수 있어요." 수레의 삐꺼덕 소리와 따가닥따가닥 하는 말굽소리가 거리 위로 흩어졌다. 나는 이 수레가 낡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튼튼해 보였다. 우리집의 이삿짐은 이제 두번만 실어 나르면 될 텐데 당나귀의 힘 이 별로 세어 보이지 않아 나는 아저씨의 비위를 맞추기로 했다. "아저씨는 참 멋진 수레를 가지고 계시는군요." "겨우 쓸만한 정도야, 멋지기는......"
"당나귀도 아주 튼튼해 보여요. 이름이 뭐예요?" "시가노라고 한단다." 아저씨는 별로 얘기를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아저씨! 오늘은 가장 재수가 좋고 행복한 날이에요. 오늘 처음으로 수레 를 타 보았고 포르뚜깔 사람의 멋진 자동차도 봤고 망가라띠바의 기적소리 도 들었으니까요." 그러나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않으셨다. "망가라띠바가 브라질에서 제일 큰 기차인가요?" "그건 아니다. 이쪽 노선에서만 제일 크단다." 그 말만 하시고는 입을 다물어 버리신다. 어른들은 가끔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왜 그럴까? 나는 수레가 새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의 열쇠를 드리 면서 공손하게 말을 하려고 했다. "아저씨!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아니다. 네가 곁에 있으면 방해만 될 테니까 나가서 놀다가 돌아갈 때 부 를 테니 그때 오너라." 나는 아저씨의 말대로 밖으로 나왔다. "밍기뉴, 날마다 우린 같이 지낼 수 있게 됐어. 어느 나무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예쁘고 아름답게 만들 거야, 이봐, 밍기뉴. 난 지금 여 기로 올 때 수레를 타고 왔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마치 영화에 나오
는 포장마차를 탄 듯 했었어. 앞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얘기해 줄께. 괜찮지?" 나는 담 밑에 잡초가 있는 곳으로 가 보았다. 그곳엔 더러운 물이 흐르고 있었다. "밍기뉴, 우리가 저번에 저 강의 이름을 뭐라고 했었지?" "아마조네스." "그래, 그랬었지. 그 강의 하류에는 밀림 속에 사는 인디안들의 배들이 많 이 있겠지, 밍기뉴?" "물론이야, 굉장히 많은 인디안들이 있을 거야." 겨우 몇 마디의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리스띠데스 아저씨가 문을 닫으 며 나를 불렀다.
"제제! 여기 남아 있을래, 아니면 우리와 같이 가겠니?" "전 여기 남아 있겠어요. 식구들이 곧 도착할 거예요." 그리고 혼자서 나는 집안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구경을 하였다.
* * *
이곳 새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처음에는 이웃들의 눈도 있고 잘 보이려고 난 얌전하게 지냈다. 그러나 얼마 후엔 전에 주운 검은 스타킹을 다시 생각 해내고 찾아 꺼내어 발끝을 잘라내고 그곳에 실을 묶어 멀리서 잡아당기니 마치 뱀 같았다. 어두운 밤이면 꼭 뱀같이 보여 장난을 치면 성공하리라고
생각했다. 새로 이사를 온 뒤 밤엔 아무도 남의 일에 간섭을 하지 않기로 규칙을 만들었다. 밤에 가족끼리 오손도손 지내는 일은 이제 먼 옛날 일이 된 것이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만든 커다란 나무들의 그림자 뒤에서 나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숨을 죽이고 앉아 망을 보고 있었다. 공장에는 밤일을 하는 사람들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을 거야. 그리고 사람 들은 작업이 끝나면 몰려나올 것이고 그때 장난을 치면 모두들 기겁을 하며 놀라 자빠지겠지! 과연 내 마음 속의 악마를 즐겁게 해 줄 사람들이 언제쯤 나올 것인가!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9시가 조금 지날 무렵, 나는 공장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새벽이면 우리는 서글픈 작업 종소리는 나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마치 작업 시작 종소리와 함께 사람들을 집어삼켰다가 밤이 되면 일에 지친 사람들을 토해버리는 괴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며 더욱이 그 공장의 주인 스크트휠드 씨는 아빠를 좇아내기까지 했으니 공장이 몹시 싫었다. 그때 저쪽에서 한 여자가 오고 있었다. 옳지! 기회는 이때다. 한 여자가 어깨에 핸드백을 메고 긴 그림자를 밟으며 오고 있었다. 구두 발자욱소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을 때 나는 슬슬 뱀을 잡아당겼다. 뱀은 잡아 끄는 대로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여 마침내 길 한가운데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일이 크게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 여자는 뱀을 보자 고함을 질러 사람들을 깨워버린 것이다. 그 여자는 길에 털썩 주저앉아 있 었고 핸드백과 양산은 길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그 여자가 비명을 너무 크게 질렀기 때문에 고요하던 밤거리를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악! 사람 살려요. 사람 살려 주세요. 뱀이 나왔어요. 뱀이......"
그 비명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나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부 엌으로 뛰어들어가 더러운 빨래통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고 뚜껑을 닫아버 렸다. 내 가슴 속에선 심장이 마구 뛰었고 밖에선 그 여자의 비명소리가 계 속 들려왔다. "원, 세상에 이럴 수가...... 뱃속에 있는 6개월 된 아이가 떨어지면 어떡 해요." 나는 빨래통 속에서 질식할 것만 같았으며 두려움으로 몸이 떨려왔다. 사 람들은 계속 웅성거리더니 그녀를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갔고 그 여자를 진 정시키려 했다.
"못견디겠어요. 금방이라도 그 뱀이 나올 것만 같아 기절할 것 같아요." "오렌지즙을 좀 마셔요. 괜찮을 겁니다. 사람들이 램프를 들고 몽둥이로 잡으러 나갔어요." 이제 겨우 조금 조용해진 듯하다. 그까짓 헝겊으로 만든 뱀한테 놀라 저렇 게 법석이람! 그런데 그 소란소리를 듣고 엄마와 잔디라 누나 그리고 라라 누나까지 소동이 있는 곳으로 나가고 있었다. "뱀이 아닙니다. 이건 낡은 여자 스타킹이에요." 누군가가 스타킹 뱀을 발견하고 외쳤다. '큰일이야, 그 여자가 너무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뱀을 그대로 두고 왔네."
사람들이 뱀끝에 묶어놓은 실을 발견하고 실을 따라 우리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으며 그때 낯익은 세 사람의 목소리가 한꺼번에 외쳤다. "바로 그 꼬마 녀석이 한 짓이야." 이제 사람들은 이곳저곳을 찾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나를 찾는 것이었 다. 침대 밑을 보기도 했고 집안과 집밖을 샅샅이 뒤졌으나 나를 찾지 못했 다. 나는 발래통 속에서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그런데 잔디라 누나가 마 침내 빨래통을 생각해 내고 말았다. "나는 알겠어, 어디 숨어 있는지!" 마침내 빨래통이 열리고 누나는 내 귀를 잡아끌고 식당으로 갔다.
엄마는 이 일만큼은 용서를 하지 않으시고 화가 나시어 세게 때리셨다. 마 치 슬리퍼짝이 노래를 부르는 듯이 소리가 났고 나는 아픔을 억제하지 못하 고 송아지처럼 울어댔다. "이 악마 같은 녀석아! 넌 여자들이 6개월된 아기를 뱃속에 넣고 다닌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나 하니?" 라라 누나도 비꼬듯이 한 마디 했다. "흥, 그런 나쁜 짓을 생각하느라고 길거리에 나가지도 않고 며칠을 얌전하 게 있었구나." "어서 가서 잠이나 자, 이 망할 녀석아!" 나는 아픈 엉덩이를 만지며 침대 위에 엎드려 누웠다. 다행스럽게 아빠는
오늘 카드놀이를 하러 나가시고 안 계셨다. 어두운 침대 위에 엎드려 매맞은 곳을 낫게 하는 데는 역시 침대가 좋다는 것을 생각하며 울음을 삼켰다.
* * *
다음날 아치에 나는 일찍 일어났다.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제 밤 그곳에 가서 뱀을 찾아 셔츠 속에 숨겨와서 다른 곳에 다시 사용하 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뱀은 없었다. 그만한 스타킹은 구하기 힘들 텐 데. 정말 뱀과 똑같은 양말이였었다.
나는 찾는 걸 포기하고 딘디냐 할머니 댁으로 갔다. 에드문드 아저씨와 얘 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퇴직자에게 있어서 지금 이 시간은 너무 이른 시간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은 일찍 찾아왔으니 좋아하시는 카드놀이를 하러 가 시지 않으셨을 테고 방안에서 신문이나 읽지 않으시면 화장실에나 가셨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역시 아저씨는 응접실에 계셨다. 오늘 밖에 나가서 카드놀이를 하시기 위 해 카드로 금일 운수를 떼어보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아저씨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못들은 척 하시는 것이었다. 우리집 에선 언제나 아저씨가 말하고 싶지 않으실 땐 그렇게 한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한테는 안 통할걸. 무슨 일이 있어도 내 앞에서 귀머거리 는 될 수 없을걸. 아저씨의 소매자락을 잡아당겼다. 하얀 와이셔츠 사이로 검정 멜빵끈이 드러나 보였다. "으응, 제제가 왔구나." 아저씨는 내가 옷 것을 보시지 못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며 말하셨다. "아저씨 지금 뭘 하고 계세요?" "응, 오늘의 운수를 알아보는 거야." "네에, 아주 재미있겠는데요?"
"그럼 재미있구말구." 나는 얼마 전부터 카드의 그림을 외워 알고 있었다. 내가 싫어하는 카드는 잭크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카드에 그려져 있는 그림은 왕의 종처 럼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저씨! 저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어요." "그래? 그렇다면 이걸 마저 끝내고 얘기하자.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겠니?" 그러나 아저씨께서는 자꾸 카드를 섞으시고 다시 시작하시곤 하셨다. "떨어졌어요?" "아니." 아저씨는 카드를 접어서 옆에 밀어 놓으시고 손바닥을 털며, "제제, 그래 할 말이란 게 돈이 관한 얘기겠지?"
"아저씨 구슬이 사고 싶은데요?" 아저씨는 빙긋이 웃으시며, "그럼 그렇지. 어디 보자, 구슬 살 돈이라......" 그리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시려는 순간 나는 아저씨의 손을 빨리 잡으 며, "아저씨 지금 한 말 농담이었어요." "그럼 할 얘기가 뭐니?" 아저씨께서는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조숙하고 영리한 점을 자랑스럽게 생 각하신다는 걸 알고 있다. 더욱이 하루하루가 다르게 모든 것을 깨우쳐 가 는 것을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아저씨께 궁금한 게 있어요. 아저씨는 소리없이 노래를 부를 수 있으세요 ?"
"소리를 내지 않고 노래를? 잘 이해할 수가 없구나." "자, 제가 부를 테니 들어보세요." 나는 속으로 <작은 오두막집>을 불렀다. "네가 지금 노래를 불렀니?" "그래요. 노래를 불렀어요. 글쎄 소리를 내지 않고도 노래를 부를 수 있다 니까요." 아저씨는 어리둥절 하시다가 싱겁다는 듯이 웃으셨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 지나 소리르 내지 않고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아저씨 저는요, 어렸을 때는 제 마음 속에 작은 새 덕분에 소리를 내지 않고 노래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오! 네가 그런 새를 갖고 있다니 참으로 놀라운 얘기구나." "아저씨는 잘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그러나 지금은 제가 약간 의심이 생겨 요. 속으로 노래하고 속으로 볼 수도 있는 거예요?" 아저씨는 내가 혼돈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시고 웃으셨다. "제제, 내가 거기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마. 그게 뭐냐하면 네가 성장하고 있다는 증거야. 네가 크면, 그때 네가 말하고 또 보는 것들을 생각이라 부 르는 것이야. 내가 전에 네게 한 말 있지? 네가 이제 곧 생각이라는 걸 갖 게 될 것이라고 말야." "그럼 철 들 나이란 말인가요?"
"그래 기억하고 있구나. 그 나이가 되면 점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된 다. 그 생각이 점차 성장해서 우리의 머리와 몸과 마음을 돌보게 하는 거란 다. 그때가 되면 너는 인생을 아주 새롭게 보게 된단다." "네에! 알겠어요. 그럼 작은 새는 뭐지요, 아저씨?" "그 작은 새는 어린이들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하느님이 만든 거야. 그랬다가 어린애가 자라서 작은 새가 필요없게 되면 그 새를 하 느님께 되돌려드려야지.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그 새를 너처럼 영리한 다른
아이의 마음 속에 넣어 주신단다. 어때? 아주 아름다운 일이지?" 나는 내가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만족해서 웃음이 나왔 다. "참 아름다운 일이군요. 이제 됐으니 돌아가겠어요." "그럼 돈은?" "오늘은 돈이 필요 없어요. 저는 오늘 매우 바쁘거든요." 나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길을 걷다가 아주 슬픈 일이 떠올랐다. 언젠가 또또까 형은 작고 귀여운 참새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다. 그 예쁜 참새는 길이 잘 들어서 먹이를 줄 때면 속바닥 위에 와서 먹을 정도였다.
새장 문을 열어놔도 날아가질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또또까 형은 새장을 뜨거운 햇빛에 놓아둔 채 잊어버렸고 그 참새는 뜨거운 햇빛에 의해 죽고 말았다. 또또까 형은 죽은 새를 뺨에 대고 하염없이 울었던 생각이 난다. 그때 형은 말했다. "다시는 새를 기르지 않을 테야!" 나도 형의 마음을 위로하는 뜻으로 곁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 "형, 나도 새는 기르지 않겠어." 집에 돌아오자마자 난 곧 바로 밍기뉴가 있는 곳으로 갔다. "슈르루까(제제가 밍기뉴에게 붙인 애칭), 한 가지 일을 좀 하러왔어." "일이라니, 그게 뭔데?"
"잠깐 기다려." "응." 난 오렌지나무 허리에 머리를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게 뭐지, 제제?" "응, 우리가 기다리는 건 예쁜 뭉게구름이야." "뭘하게?" "이제 내 작은 새를 날려보내려고." "그렇다면 이제 그 새가 필요없어졌다는 거구나." 우리는 뭉게구름이 지나기를 기다리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밍기뉴! 저기 좀 봐, 어떠니?" 마치 꽃잎을 닮은 하얀 구름 한 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맞아, 바로 거기야 밍기뉴!" 나는 흥분되어감을 억누르며 셔츠 앞자락을 열어 젖혔다. 그러자 새가 나
의 가슴으로부터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작은 새야, 날아라. 높이 날아라. 훨훨 날아가 하느님의 손끝에 앉으렴. 하느님은 널 다른 애에게 보내주실 거야. 그러면 너는 지금까지 나를 위해 그랬듯이 그 애를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거야. 잘 자거라, 내 예쁜 작은 새야!" 새를 보낸 내 가슴은 왠지 텅 빈 것 같았고 허전한 마음은 오래도록 가시 지 않을 것 같았다. "제제, 저것 좀 봐. 작은 새가 벌써 구름 위에 앉았어!" "나도 보았어." 나는 머리를 밍기뉴의 몸에 기대고 작은 나의 새가 앉아있는 구름이 멀리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난 작은 새와 친했었는데......" 나는 밍기뉴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다정한 목소리로 불렀다. "슈르루까!" "응?" "운다면 흉해 보일까?" "울면 바보야, 흉해 보이기도 하구. 왜 그래, 제제?"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아직 어른이 되질 않았기 때문인지, 익숙치 못해 서인지 아직도 가슴이 텅 빈 것 같고 허전하기만 해."
* * *
글로리아 누나는 이름 아침부터 나를 찾았다. "제제, 어디 손톱 좀 보자."
손을 내밀며 손톱을 보여주니 누나는 요리조리 살피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 았다. "그럼 귀 좀 보자." 나는 얼굴을 돌려 귀를 보여줬더니, "아휴, 더러워." 누나는 나를 수도가로 데리고 가서 수건에 비누를 칠하더니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삐나제 인디안의 사내가 더럽게 산다는 말을 나는 들은 적이 없어. 자! 이제 옷을 갈아입자." 누나는 옷장 설합을 뒤적거리며 찾았으나 마땅한 옷이 없었다. 뒤지면 뒤 질수록 낡고 기우고 헝겊을 댄 것 뿐이었다. "이러쿵 저러쿵 말할 필요도 없겠구나. 이 옷들만 봐도 네가 얼마나 지독
한 장난꾸러기인지 알 수가 있겠어. 자, 이 옷을 입자. 그래도 이 옷이 그 중에서 좀 나은 것 같구나." 누나와 나는 앞으로 나에게 주어질 기적같은 일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 났다. 학교 부근에 오니 벌써 많은 아이들이 입학하기 위해 엄마들의 손을 잡고 오고 있었다. "제제, 이제부터 말썽부리지 마, 응? 누나의 말 알아 듣겠지?" 누나와 같이 들어간 교실은 아이들이 가득했다. 차례를 기다리고 앉아 있 다가 우리의 차례가 되어 누나의 손을 잡고 교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안경을 낀 여교장 선생님이 계셨다. "동생인가요?"
"네, 어머니께선 일하러 가셨기 때문에 오시지 못했어요." 선생님은 나를 자세히 보셨다. 안경이 두껍고 굵어서인지 눈이 크고 까맣 게 보였다. 한 가지 우스운 것은 교장선생님의 얼굴에는 남자처럼 수염이 나 있었다. 그래서 교장이 됐는지도 모를 일이다(역주:브라질 혼혈족 중에 는 여자도 수염이 나는 사람이 있음).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요?" "나이에 비해서 허약한 편이에요. 그래도 글은 벌써부터 잘 읽을 줄 알아 요." "몇 살이지?" "2월 6일이면 여섯 살이에요."
"음, 아주 똑똑하군요. 카드를 작성할까요? 우선 부모님의 성명부터 말해 주세요." 글로리아 누나는 아빠의 이름을 말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이름을 말할 때 는 <에스떼파니아 데 바스콘셀로스>라고만 말했다. 나는 누나가 빼먹고 말 한 부분을 큰 소리로 말했다. "에스떼파나이 삐나제 데 바스콘셀로스입니다." 글로리아 누나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삐나제랍니다. 어머니는 인디안의 딸이랍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인디안 이름을 가진 유일한 학생이 될 것이 무척 자랑스 러웠다. 글로리아 누나는 등록을 끝낸 후에도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세요, 아가씨?" "교복에 대해서 좀 알고 싶어서요. 선생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저희 아버지 께선 실직자이시기 때문에 저희는 생활이 매우 어려워요." 교장선생님이 내 키와 옷의 치수를 재기 위해 뒤로 돌았을 때 옷의 기우고 꿰맨 곳이 드러나 가난을 충분히 증명했다. 선생님은 치수를 적은 종이를 주며 에우라리아 부인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다. 에우라리아 부인도 역시 내가 너무 작은 것을 보고 놀랐다. 여러 옷들 중에서도 제일 작은 치수를 골라 입었는데도 마치 병아리가 긴 옷을 입은 모습이었다.
"제일 작은 옷인데도 크구나. 작긴 참 작구나. 곧 크겠지 뭐." "가지고 가서 줄일께요." 우리는 교복 두 벌을 선물로 받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교복을 입은 나를 보면 밍기뉴의 표정은 어떨까? 학교에 나가 생활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나갔다. 나는 매일매일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모두 애기해 주엇다. "학교의 종소리는 굉장히 커. 그러나 교회의 종소리만큼은 안 크지만 그 소리를 듣고 애들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각자 자기 선생님이 서 계신 곳으
로 말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는 네줄로 날나히 줄을 맞추어 교실로 데리 고 들어간단다. 그리고는 열고 닫을 수 있는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책상 안의 학용품을 넣어 두지. 그리고 난 다음 우리는 국가를 배운단다. 우리 선생님께선 훌륭한 국민이 되고 애국자가 되기 위해서는 맨 먼저 국가를 잘 알아야 한다고 가르쳐주셔싼다. 국가를 다 배우면 너에게 불러 줄께, 밍기 뉴." 매일 새로운 일들이 일어났다. 친구도 사귀게 되지만 가끔 싸움도 했다. 그러면서 많은 것들을 자꾸 알게 됐다. "그 꽃은 왜 가지고 왔니?"
예쁘게 생긴 여자 아이의 손에는 책과 포장이 잘 된 노트가 들려져 있었으 며 머리는 두 갈래로 땋아 내렸다. "우리 선생님께 드리려고 가져왔어." "왜?" "난 선생님을 좋아하거든, 선생님을 좋아하는 애들은 꽃을 갖다드리거든." "남자 애도 그럴 수 있니?"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남자와 여자가 무슨 상관이 있니?" "아, 그래?" "응." 그런데 우리 담임선생님은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께 꽃을 가져오는 아 이들은 없었다. 아마 선생님이 예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눈만 조금 예
쁘게 생겼더라면 그렇게 안 예쁘진 않을 텐데. 그러나 선생님은 점심시간이 면 가끔 내게 과자를 사먹으라며 돈을 주시는 분이었다. 다른 반 교실을 유 심히 봐도 탁자 위에 꽃이 없는 교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오직 우리 선생 님의 탁자 위의 꽃병만 늘 비어 있었다.
* * *
그 무렵 나는 커다란 하나의 모험을 즐기고 있었다. "밍기뉴, 난 오늘 박쥐를 붙들었어." "네가 이곳에 와서 살게 될 거라고 말하던 루씨아노라는 그 박쥐 말이니?"
"바보야, 아니야! 굴러다니는 박쥐말이야. 난 말야 요즈음 차가 학교 근처 를 천천히 지나가면 뒤에 달린 자동차 바퀴에 매달린단 말야. 한참 달려가 면 아주 멋진 여행을 한 기분이 든단 말이야. 차가 모퉁이에 서서 다른 차 가 오나 살펴볼 때 얼른 뒤어오르는 거야. 차가 빨리 달리 때타면 땅에 떨 어져 엉덩방아를 찧거나 팔을 부러뜨리거든. 그런 박쥐 말야. 그래도 못 알 아 듣겠니?" 그리고 나는 수업시간에 있었던 일이나 애들과 놀았던 일들을 계속해 주었 다. 내가 국어시간에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을 때는 밍기뉴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도나 세실리아 빠임 선생님은 내가 글을 제일 잘 읽는 학생이라고 칭찬하셨다. 가장 성적이 우수한 학생! 그런데 그 말이 의심스러워졌다. 에 드문드 아저씨에게 진짜 내가 우수한 학생인지 여쭈어 봐야겠다. "밍기뉴! 다시 박쥐 애기를 해 줄께. 그 얘기가 얼마나 재미있느냐 하면 밍기뉴 너를 말처럼 타고 달릴 때는 위험하지 않잖아?" "그건 진짜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야. 넌 진짜로 미친듯이 서부를 달리며 물소나 들소를 사냥하는 박쥐가 아니잖아, 잊었니?"
밍기뉴는 말로써는 나를 당해낼 재간이 없기 땜누에 무조건 내 말을 믿어 야 했다. "그런데 밍기뉴! 애들이 넘보지 못하는 차가 하나 있어. 넌 뭔지 아니? 포 르뚜깔인 마누엘 발라디리스란 사람의 차야. 넌 그렇게 흉칙스런 이름을 들 어 본 적이 있니? 아주 좋지 않은 이름이지? 마누엘 발라다리스!" "그래, 나에게도 생각이 있어." "난 밍기뉴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모를 줄 아니? 이제는 너를 올 라타고 말타기 연습을 해 볼께. 그래서 모험을 한 번 해 보는 거야."
* * *
기쁨 속에서 하루하루가 지나갔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선생니므이 탁자 위에 꽃병에 꽃을 갖다가 꽂아 드렸다. 선생님은 기뻐하시 나에게 기사님이라고 하셨다. "그게 무슨 말인지 아니, 밍기뉴?" "기사란 왕자님처럼 교육을 훌륭하게 받은 신사를 말하는 거야." 나는 학교 공부에 점점 흥미를 느껴 열심히 공부를 했다. 학교와 집안에서도 그러한 나에게 화를 내지 않았으며 심지어 글로리아 누나는 그런 나를 가리켜 작은 악마는 설합 속에 넣어두고 딴 사람이 됐다고까지 말했다. "밍기뉴, 너도 내가 요즈음 변했다고 생각하니?"
"글쎄, 그렇기도 해." "그래? 그러다면 비밀 얘기를 해 주려고 했는데 그만 둬야겠다." 나는 밍기뉴에게 화를 내고 왔다. 그러나 밍기뉴는 나의 화가 오래가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그 비밀 얘기란 오늘 밤에 일어날 일이다. 나는 어떤 조바심같은 것으로 들떠 있었다. 공장에선 싸이렌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사람들이 몰려 나왔다. 긴 여름의 낮은 밤을 천천히 끌고 오는 것 같았다. 저녁 식사시간도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나는 뱀장난도 또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문 앞에 앉아 엄마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잔디라 누나는 그런 내가 이상하게 생각되었는지 풋과일을 먹어 배라도 아프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 피곤에 지친 엄마의 모습이 길모퉁이에 나타났다. 이 세상에 우리 엄마의 모습을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에게 달려가싿. "엄마! 지금 오세요?" 나는 엄마의 손등에 키스를 해드렸다.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엄마의 피곤에 지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엄마, 많이 피곤하시죠?" "그래 제제, 기계에서 뿜어내는 열기를 견디기가 힘들구나." "엄마, 도시락 가방 이리 주셍. 제가 들겠어요?" 나는 도시락가방을 받아들었다. "오늘도 장난 쳤니?" "조금밖에 치지 않았어요, 엄마."
"그런데 제제가 왜 나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엄마는 뭔가 눈치를 채고 계시는 것 같았다. "엄마, 그래도 저를 사랑하시죠." "그럼 사랑하고 말고. 다른 애들과 똑같이 사랑하지. 그런데 왜 묻니?" "엄마! 나르딩뇨를 아시죠? 빠따 쇼카 아줌마의 조카 말이에요." 엄마는 알 것도 같으신지 웃으시며, "그래 알 것 같구나."
"그럼 됐어요. 그런데 그 애 엄마는 아주 멋있는 양복을 하나 만들어 주셨는데 초록색에 흰줄이 있는 옷인데 목에는 단추를 잠그게 했고 칼라가 달린 옷이에요. 그애한테는 작아서 입지 못한데요. 그걸 물려 줄 동생도 없어서 팔려고 한대요. 엄마 그 옷 저에게 사 주시겠어요?" "제제, 그건 너무 어려운 주문이구나. 우리는 형편이 어렵잖니?" "돈은 두 번에 나눠서 줘도 된데요. 그리고 비싸지도 않구요. 그런 장식이 있는 옷은 살 수도 없잖아요. 엄마!"
나는 엄마에게 기회주인자인 야곱처럼 돈은 여러 번에 나눠 줘도 된다고 몇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엄마, 난 우리 반에서 공부도 제일 잘하는 뛰어난 학생이라고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엄마, 꼭 사 주세요. 새 옷이라곤 못 입어봤잖아요." 엄마가 말씀을 하시지 않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은근히 조바심이 났다. "엄마, 그 옷을 사지 못하면 난 평생 시인의 옷을 못 입어 볼 거예요. 그걸 사주시면 라라 누나가 비단 헝겊으로 커다란 나비넥타이를 만들어 줄 거예요." "알았다, 제제. 밤일을 일 주일 동안 해서라도 사 주마."
나는 엄마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엄마의 손을 나의 얼굴에 댄채 집으로 왔다. 그리하여 난 시이닁 소을 입게 되었고 그 모양이 얼마나 예뻤는지 에드문드 아저씨는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며 사진관으로 데리고 가셨다.
* * *
학교와 꽃, 그리고 한 송이의 꽃, 학교......
한 동안 모든 것이 순조로왔다. 고도푸레도 씨가 우리 교실에 들어와 우리 담임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기 전까지는 나에게 별 문제가 없었다.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화병에 꽂힌 꽃을 가리켰다는 것뿐이었다. 그가 돌아가고 난 후 선생님은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더니 수업이 끝나고 나를 부르셨다. "제제, 할 얘기가 있는데 잠깐 기다리겠니?"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망설이시는 듯 핸드백을 계속 뒤적이셨다. 아마 핸드백을 정리하시며 마음을 가다듬고 계시는 것 같았다. 마침내 선생님은 말씀을 하셨다.
"고도푸레도 씨가 내게 좋지 않은 얘길 들려줬어. 그게 사실이냐, 제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 꽃 말이죠? 그렇죠?" "왜 그런 행동을 했니?" "아침 일찍 하교에 오는 도중에 세르지뉴 씨댁의 정원을 지나다가 대문이 조금 열려있는 것을 보았어요. 재빨리 들어가 꽃을 꺾었어요. 하지만 꽃이 너무 많아서 표시가 나질 않았어요." "그랬었구나. 하지만 그건 옳지 못한 짓이란다. 꽃 몇 송이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남의 물건에 손을 댄다는 건 도둑이나 하는 짓인거야."
"그렇지 않아요. 선생님!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의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꽃들도 하느님의 것이잖아요." 선생님은 나의 말을 들으시고 놀라시는 것 같았다. "저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저희 집에는 정원이 없어요. 또 꽃을 사려면 돈도 필요하고요. 저는 선생님의 화병만 늘 비어있는 게 가슴이 아팠어요." 선새임은 나의 말을 듣고 침을 삼키셨다. "선생님께선 가끔 제게 과자를 사먹으라고 돈을 주셨잖아요?" "제제, 난 너에게 매일 조금씩 주려고 했지만 네가 그냥 가버리곤 했어."
"매일 선생님께 돈을 받을 수가 없었어요." "그건 왜?"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는 애가 또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핸드백에서 손수건을 꺼내시더니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 올빼미 아세요?" "그게 누군데?" "머리를 돌돌 말아 끈으로 묶고 다니는 검둥이 여자애 말예요." "응, 알겠다. 도로띠리아 말이지?" "맞아요. 그 애는 저보다도 집안이 더 가난해요. 다른 아이들은 그 애가 검둥이이고 가난뱅이라고 같이 놀려고도 하지 않아요. 저는 선생님께서 주신 돈으로 과자를 사서 그 애와 같이 나눠 먹었어요."
선생님께서 또 오래 눈물을 닦으셨다. "선생님께선 저보다도 그 애에게 돈을 주셨어야 했어요. 그 애의 어머니가 남의 집 빨래를 해서 먹고 살아요. 형제들이 열 하나나 된데요. 그리고 아직 모두 어려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대요. 저의 딘디냐 할머니께서는 매주 토요일이면 그 애 집에 쌀과 콩을 조금씩 가져다주곤 해요. 그래서 저의 엄마 말씀대로 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과 나눠먹으려고 그 애와 나눠 먹은 거예요. 선생님!" 선생님의 얼굴엔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예 닦을 생각도 하지 않으셨다.
"전 선생님을 슬프게 해드리고 싶지 않았는데...... 선생님, 다시는 나쁜 짓 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만 하겠어요. 약속할께요, 선생님." "그래서 우는 게 아니란다, 제제." 선생님은 내 손을 꼭 잡으시고, "넌 아주 고운 마음씨를 가졌구나. 그리고 네가 지금 한 말 지켜야 한다, 제제?" "맹세할께요, 선생님. 그러나 전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가 아녜요. 선생님께선 저를 모르셔서 그래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 내게는 네가 아주 착하고 고운 애야." "하지만 선생님! 저 꽃병은 언제나 저렇게 비어 있어야 하나요?"
"이젠 꽃을 가져오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얻어오면 모르지만. 그리고 저 꽃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야. 나는 꽃병을 볼 때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을 보게 될 거야. 이 선생님에게 그 꽃을 준 사람은 바로 제제, 너야. 그럼 됐지 않니?" 선생님은 웃으시며 내 손을 놓으셨다. "황금같은 마음을 가진 아이야. 네게 조그만 꿈을 준 이 선새임은 너로부터 가장 크고 훌륭한 것을 받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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