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7, 2008

행복한 여행자

교육받은 외교관의 딸이였던 할머니는
문화혁명 전에는 교직에 몸담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 사회의 대격변을 가져다준
고난과 혼돈의 세월속에서,
그녀의 삶은 몇백 만의 다른 사람들의 삶과 마찬가지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같았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다시 찾을 길이 없었다.
재산은 다 잃어버렸고,
갖고 있던 물건들과 일신의 안전조차 간데 없었다.
그녀는 결국 혼자 땅 끝인 이 섬에 와서, 뱀과 토끼를 잡아 팔아 한 목숨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갈 수 있었다.

후회하는 일을 단 한 가지만 들라면 무엇일지 내가 묻자,
할머니는 밝게 웃으면 왈츠를 못 배운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가장 생생한 어린 시절 기억 중 하나는,
많은 영국 손님들이 참석했던 홍콩의 무도회에서 찍은
사진 속에 있었다. 갑자기 무도회장은 휘날리는 스커트들과
그녀가 이제껏 들어본 중 가장 달콤한 음악들로 가득 찼다.
쌍쌍이 왈츠를 추고 있었다.
이 어린 중국 소녀에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언젠가 이담에 크면 저 우아한 왈츠를 추는 여자들 중의
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

그녀는 어른이 되었지만 중국은 변했다.
더 이상 왈츠 같은 건 없었다.
그리고 지금 그녀의 삶에는 아무런 환상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야기가 끝나 조용해지자 나는 식탁 위로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러고는 아직도 왈츠가 배우고 싶은지 나지막하게 물었다.

잔잔한 웃음이 그녀의 얼굴에 퍼졌다.
우리는 일어나서 낡아빠진 테이블과 그녀의 좁은 간이침대 사이
먼지가 가득 쌓인 곳. 우리의 무도회장 마루를 행해 같이 나아갔다.

"오 하느님" 나는 기도했다 "왈츠가 기억나게 해주십시오.
어떤 왈츠라도 어떻게 손을 잡아 이끄는지 떠오르게 해주십시오."
나는 슈트라우스의 곡을 콧노래로 부르고 시탭을 밟으면서,
우리는 위태위태하게 춤추기 시작했다.
그러나 우리의 춤은 곧 부드러워지고 대담해졌다.
할머니의 헐렁한 중국식 바지가 소용돌이치는 스커트가 되었고,
그녀는 다시 젊고 아른다워졌다.
그리고 나는 키 크고 믿을 만하고 힘센, 잘생긴 외국인이 되었다.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은 짧았다.
나는 할머니의 이름도 몰랐지만.그녀로부터 뜻깉은 교훈을 얻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좋은 시절은 사라졌다.
인생의 마지막 길에 그녀는 혼자였다.
그러나 그녀는 슬퍼하지 않았다.
그녀는 잃어버린 것들을 극복하고 받아들였다.
그녀는 행복한 여자였다.

- 파울라 맥도널드의 행복한 여행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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