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7, 2008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초등학교 떄였다. 몇 학년 떄였는지 정확하게 기억되지는 않는다.
아마 저학년 때였을 것이다.
담임 선생님은,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일기쓰기를 민족의 사명으로 생각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
학기 초에 일기쓰기를 아예 고정 숙제로 공표했을 정도였다.
그리고 수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일기장 검사부터 했다.
나도 회초리가 무서워 날마다 일기를 써야 했다.
회초리는 싸리가지로 만든 가내 수공품으로,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교육용 흉기의 일종이었다.

하지만 나는 일상의 어떤 부분도 타인에게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지독한 수치심 때문이었다.
그떄 나는 골무산 밑에 웅크리고 있는 초가움막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폭삭 무너져 버릴듯이 보이는 초가움막이었다.
몇 년간 흉년이 계속되고 있었다.
내 일기는 날마다 똑같은 내용으로 짤막하게 쓰여질 수밖에 없었다.
담임 선생님이 가장 싫어하는 형태였다.
다른 아이들이 그런 식으로 일기를 쓰면
어김없이 회초리 세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만은 예외였다.
담임 선생님은 내 일기를 건성으로 훑어보고는
슬그머니 다음 자리로 옮겨가기 일쑤였다.
나는 어리석게도 날마다 운이 좋아서
회초리를 모면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니 절대로 운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일기를 대충은 기억해 낼 수 있다.

학교서 도라와
할머니하고 동냥 어더서 밥 묵고
숙제하고
밤이 와서.. 아버지가 보고시퍼슴니다


- 이외수 님의 산문집 내가 너를 향해 흔들리는 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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