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ugust 6, 2008

도로 네 눈을 감아라

옛날에 화담 서경덕 선생이 길을 가다가 집을 잃고 길에서 울고 있는 사람을 만났답니다.
"너는 왜 울고 있느냐?"

"네. 저는 다섯 살에 눈이 멀어 지난 20년 동안 장님으로 살아왔습니다. 오늘 아침 집을 나와서 길을 걷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천지 만물이 또렷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도 기뻐서 집에 돌아가려고 하니까, 골목길은 여기저기 많기도 하고, 대문도 모두 같아 보여서 제가 살던 집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울고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집으로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겠다. 도로 네 눈을 감아라. 그러면 바로 네 집을 찾을 수 있을 것이야."

그러자 그 사람은 다시 눈을 감고 지팡이를 더듬거려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었다는 거지요.

이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보이지 않던 천지 만물의 형상과 빛깔이 눈앞에 나타나자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한꺼번에 뒤죽박죽이 되어 헛된 생각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지팡이를 두드리고 자기 발걸음을 믿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자기 집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입니다.

-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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